제주생활 15년 그림밖에 모르는 바보작가 김품창 ‘어울림의 공간’에 정착하다

입력 2016-07-22 16:11
어울림의 공간 제주환상

7월 23일부터 3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김품창 제주 15년-서울’展


중견화가 김품창(50)이 제주에 정착한 지 어느덧 15년이 됐다. 추계예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온 작가는 작업에 대한 변화의 열망으로 2001년 제주행을 택했다. 서귀포에서 활동하는 스승 이왈종 화백의 도움이 있었지만 연고도 없는 제주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일이 녹록치는 않았다. 그림은 팔리지 않고 쌀이 떨어져 밥을 굶는 날도 많았다.
그는 액자제작비가 비싸 스스로 목공이 돼 액자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림 그리고 남은 한지 한 조각조차 귀하고 아까워 물에 불려 다시 그림판으로 만들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전시에서는 서툴고 투박하지만 직접 만든 액자도 만날 수 있다. 손수 만든 액자에는 할 줄 아는 게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는 바보작가 김품창의 우직한 손길이 스며들어 있다.
그의 그림 소재는 한라산, 바다, 밤하늘, 해녀, 고래, 문어, 갈매기, 소라, 귤나무, 야자수 등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광이다. 자연과 더불어 그 속에 사는 생명체와 인간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을 붓질했다. 서로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소통하고 살아가는 이상세계를 그린 것이다. 15년간 그렇게 지내다보니 자신도 어느새 제주 사람이 됐다.
제주 이야기



김품창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31일까지 열린다. ‘김품창 제주 15년-서울’ 전으로 정착 초기의 서정적인 풍경 작품을 비롯해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판타지 작품까지 50여점을 그림일기처럼 펼쳐 보인다. 사람이 고래를 타고 바다를 여행하거나 나무가 사람 얼굴 형상을 하고 있는 등 ‘어울림의 공간’을 표현했다.
‘어울림’이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그가 부인 및 딸과 함께 낯선 제주에 정착하기까지 이곳 주민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작업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미술교육 등 지역 문화발전에도 기여했다. 부인 장수명씨가 글을 쓰고 그가 삽화를 그린 여러 권의 동화책이 지역 방송을 중심으로 전파를 타면서 잔잔한 공감을 사기도 했다.
어울림의 공간 제주환상

이번 전시에는 길이 7m의 초대형 작품과 제주도 오름 숫자만큼 368여개의 전복껍데기 하나하나에 그림을 그려 제주도 지도를 형상화한 작품도 선보인다. 작가는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과 생명체들이 나에게 친구로 다가와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며 “자연과 어울려 지내는 생활에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찌 옛 시절에 대한 감회가 없겠는가. “2001년 여름, 답답하고 메마른 서울도심을 버리고 나만의 창작세계를 찾기 위해 제주도로 떠나왔다. 하지만 제주도라는 새로운 환경은 무척이나 이질적이었고, 생소한 낯설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오로지 나의 가족만이 유일한 벗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뀜에 따라 변하는 경이로운 자연현상과 그 속에서 서서히 발견되어 드러나는 작은 생명체들은 신비로움으로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작가의 그림에서는 하늘, 땅, 바다의 구별을 두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표현되는 모든 생명체들과 대상 모두가 둘이 아닌 하나로 귀결된다. 21세기 너무나 빠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가운데 묵묵히 자신과의 싸움을 그칠 줄 모르는 ‘김품창 표’ 창작 작업은 가히 듣는 이와 보는 이의 마음에 작은 울림으로, 커다란 공명음을 만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예술평론가 홍가이 교수는 “제주도의 풍경이나 풍정이 아니라 제주도 풍광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풍광은 바람과 빛이다. 둘 다 파장을 의미한다. 파장은 움직임이고, 파장을 통해서 모든 자연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이런 우주의 모든 파동들은 서로 어우러져서 하나의 거대한 자연의 순환계를 이룬다. 김품창의 작품이 그렇다”고 평했다.


김품창 작가

풍경화나 풍정화가 정적인 한 단면을 보여주어, 계속적인 순환의 운동성이 그 핵심인 자연을 담는데 실패는 데 비해 김품창의 자연은 한계가 없이 계속 움직임을 부여하여, 그의 화면 속의 각 파동의 움직임들은 각기 캔버스 밖으로 진동하여 뻗어나간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풍광을 동양적인 이해의 자연관으로 담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