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도 않나 보다. 전날까지 부산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왔다는 배우 류준열(30)은 여느 때처럼 밝았다. “안녕하세요.” 힘찬 인사와 함께 인터뷰 테이블에 앉아 가벼운 농담들로 분위기를 풀었다. 힘들지 않느냐는 걱정에 “가진 건 체력밖에 없다”며 활짝 웃어 보이는 그다.
tvN ‘응답하라 1988’(응팔) 이후 5개월 만에 또 한 작품을 마쳤다. MBC ‘운빨로맨스’에서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게임회사 CEO 제수호 역을 맡았다. 첫 로맨틱 코미디 도전이자 첫 지상파 주연작. ‘로코 여왕’ 황정음(심보늬 역)과 함께해 힘을 얻었다.
2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류준열은 “응팔에서는 덕선(혜리)을 짝사랑하는 역할이라 혼자 속앓이를 많이 했다면 이번에는 황정음 선배님과의 로맨스 신이 많았다”며 “로코를 해보니 너무 재미있더라. 저랑 잘 맞는 것 같다”고 웃었다.
운빨로맨스는 높은 기대 속에 지난 5월 25일 첫 방송됐다. 응팔 이후 ‘대세’로 떠오른 류준열의 차기작이었기에 관심이 큰 건 당연했다. 본인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법한 상황. 류준열은 “더 최선을 다해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 부담감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초반 8~9%에 머물던 시청률은 점차 하락세를 타더니 결국 자체 최저 기록(6.4%)으로 막을 내렸다. “시청률이라는 게 사람 뜻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역할에 맞게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것에 맞춰서 계속 연기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응답하라의 저주’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응답하라 시리즈 출연 배우들의 다음 작품은 잘 안 된다는 일종의 징크스. 류준열 역시 이런 반응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진 않는 듯했다. 그는 누구보다 단단한 멘탈의 소유자이므로.
“응팔이라는 작품을 통해 시청자를 만났던 그 순간들이 행복했거든요. 제게는 그냥 너무 소중한 작품으로 남아있어요. 먼 훗날 ‘이 배우의 대표작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응팔이라는 얘기를 들어도 전혀 섭섭하지 않을 작품이에요. 그래서 ‘저주다, 아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 자체가 너무 소중해요.”
-운빨로맨스 끝나고 곧바로 영화 ‘택시 운전사’ 촬영장에 합류했는데.
“현장 스태프 분들이나 동료·선배님들이 (제 상황을) 다 알고 계셔서 ‘고생했다’며 응원해주시고 편하게 맞아주셨어요. 부담 없이 편하게 촬영하고 있어요.”
-체력적인 문제는 괜찮은가.
“그럼요. 아시잖아요. 제가 가진 건 체력밖에 없어서(웃음). 몸으로 많이 애쓰고 있습니다.”
-체력이 어느 정도이기에?
“실제로는 별로 안 좋은데 워낙 집중력이나 의지가 강해서 스스로 체력이 좋다고 착각하고 있는 스타일이랄까?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웃음).”
-제수호를 사랑했던 팬들이 많았다.
“그저 무한한 감사 뿐인 것 같아요. 제가 의도했던 디테일이나 인물의 감정선을 그대로 이해해주셔서 기분 좋았죠. 많이 사랑해주셔서 너무 행복했어요.”
-초반에는 응팔의 정환이랑 캐릭터가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오해하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정환이가 ‘츤데레’(겉은 무뚝뚝한데 속은 자상한)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인물인데 수호도 처음에는 비슷한 모습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수호는 과거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그랬다는 점이 정환이와 달랐죠.”
-황정음과 호흡을 맞춘 소감은.
“처음부터 기대감이 많이 있었는데, 저에게는 너무 감사한 선배님이세요. 역시 괜히 ‘황정음, 황정음’ 하는 게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연기할 때도 굉장히 많은 배려를 해주셨어요. 끝나고 나니까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배려였나.
“제 감정선을 많이 물어보셨어요. 저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계속 질문을 해주셨죠. 수호라는 인물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을 많이 주신 것 같아요.”
-로맨스 신을 찍을 때 꾸중을 듣기도 했다던데.
“꾸중이라기보다요(웃음). 선배님은 경험이 많으셔서 그 부분에 있어서 도가 터있으시니까 팁 같은 걸 주셨어요. 어렇게 하면 두 인물이 좀 더 사랑스럽게 보일 것 같다거나 혹은 감독님이 생각하는 목표에 가까운 장면이 나올 것 같다거나.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구체적인 장면을 꼽아 본다면? 키스신이라던가.
“키스신? 원하세요?(웃음) 그죠. 키스신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정말 편안하게 해주신 것 같아요. 어떤 신이든 사람이 릴렉스 되어 있을 때 좋은 연기가 나오잖아요. 더군다나 키스신은 아무래도 긴장하기 쉬우니까 선배님이 많이 풀어주려고 노력하셨어요.”
-데이트 앞두고 설레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제가 항상 뭔가를 할 때 많이 떨거든요. 누군가를 새로 만나거나 하면 굉장히 떨리고 설레어요. 그런 감정들을 녹여내서 연기에 잘 묻어났던 것 같아요.”
-본인만의 로코 비결이 좀 생겼나.
“수호라는 인물이 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재미있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망가질 때 고민 없이 망가지고, 달콤한 부분에선 최대한 스위트하게 하려고 노력했죠. 인물의 외형적인 면보다 솔직한 모습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수호는 연애할 때 시원시원한 스타일인데, 실제 본인은 어떤가.
“제 실제 연애가 그랬는지 기억이 안 나서…. (질문한) 기자님한테 좀 섭섭하네요. 너무 오래된 얘기를 꺼내셔서(웃음).”
-실제로는 어떤 연애를 하고 싶은지.
“저는 작품 할 때처럼 연애한다는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작품을 찍을 때,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를 알아가면서 나중에는 떨어지기 싫을 만큼 정이 붙는단 말이에요. (비유하자면) 그런 연애를 하고 싶어요.”
-쉴 틈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에너지 소비도 심할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이런 유쾌함을 유지하는 원천은 뭔가.
“현장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쟤는 피곤한데 저렇게 장난을 치고 웃고 떠들고 잘 돌아다닌다’고. 저는 시청자나 팬 분들이 매번 다음을 기대하고 응원해주시는 것에 에너지를 받아요. 그게 드라마를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해요. 또 제 성격이 워낙 내려놓는 편이라…. 지친다고 분량이 줄어든다거나 촬영이 빨리 끝나진 않잖아요(웃음).”
-2014년 데뷔해 2년 사이 많은 게 바뀌었다. 중심을 잘 잡고 있나.
“네. 중심을 잃을 시간이 없더라고요(웃음). 시간이 되게 빨리 지나가서 체감으로는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아직도 신인인 것 같고…. 초심 이외에 다른 생각들이 들어올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차기작으로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겠다.
“이제 보여드릴 건 ‘더 킹’, 찍고 있는 건 ‘택시 운전사’ 이렇게 될 것 같아요.”
-더 킹에서는 정우성·조인성, 택시 운전사에서는 송강호와 호흡을 맞추는데.
“굉장히 많이 배웠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그들의 연기를 보고 감동을 받았잖아요. 그런 선배님들과 같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모니터를 하는 순간이 너무 소중한 거죠. 좀 부풀려 얘기하자면 진짜 숨 쉬는 것까지 구경할 정도로 많이 배우려고 노력을 했어요.”
-끝으로, 류준열이 생각하는 본인의 매력 포인트나 인기비결이 있다면.
“하, 마지막에서 막히네요. 술술 대답했다고 생각했는데(웃음). 그냥 밝고 좋은 에너지를 드려서 좋아해주시지 않나, 사건사고가 많은 세상 속에서 그래도 한 배우가 이렇게 기분 좋은 얼굴과 모습으로 에너지를 준다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지 않나 싶어요. 팬들이 그런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덕분에 뭐가 되게 재미있고, 덕분에 요즘 뭐가 살만하고.’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