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1분59초 동안 공연을 펼친다. 솔로, 듀엣, 트리오, 단체 등 자유롭게 팀을 구성해 누구는 노래를 하고 누구는 춤을 춘다. 이외에 악기 연주, 콩트, 영상 등도 다채롭게 선보인다.
20일(현지시간) 파리 중심부 마레지구의 복합문화공간 ‘꺄호듀텅플’에서 선보인 안무가 안은미의 ‘1분59초 프로젝트’엔 프랑스 아마추어 예술가 38개팀이 참가했다. 21일엔 또다른 아마추어 예술가 37개 팀이 이름을 올렸다. 500석 안팎의 객석은 이틀 내내 꽉 찼다.
안은미는 이 공연에서 특별한 테크닉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하도록 격려하고 충고했을 뿐이다. 아마추어들이 만든 것이라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고는 할 순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진솔하고 독특한 공연이 나오게 됐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된 한 여성 참가자는 자신의 입양 당시 사진 영상을 배경으로 남편, 아이와 함께 춤을 춰 먹먹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 공연은 안은미가 지난 2013년 대중을 상대로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예술정신을 실현하고자 처음 기획한 것이다. 이듬해부터 지금과 같은 ‘1분59초 프로젝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올해는 국내 무대를 벗어나 파리 시민들에게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파리여름축제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지난 14일 시작돼 8월 6일까지 열리는 올해 파리여름축제는 파리의 여러 실내·외 무대에서 16개 작품이 80회 상연된다.
파리여름축제는 안은미와 특히 인연이 깊다. 이 축제의 예술감독인 캐롤 피에르츠가 지난 2013년 ‘심포카 프린세스 바리’와 2014년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를 선보여 안은미를 프랑스에 소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파리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은 안은미는 2015년 파리가을축제에서 ‘땐스 3부작’ 초청 공연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1년 내내 프랑스 전역을 돌며 투어 공연 중이다.
파리여름축제가 한불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마련한 한국 공연 특집 ‘우리는 한국인이잖아, 자기야(We are korean, honey)'는 20~24일 안은미의 ‘1분59초 프로젝트’,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Let me change your name)’을 필두로 이태원이 이끄는 국악밴드 고물,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 정은혜 등의 판소리 콘서트를 잇따라 펼칠 예정이다. 공연계의 안은미 사단이 총출동한 셈이다. 이외에 안은미 의상 경매 및 토크쇼, 한국 무용영상 상영, 한국음식 판매 이벤트 등이 곁들여진다.
이날 공연에서 만난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들떠 있었다. 2인무를 보여준 클로드 레즈닉(76)과 미슐린 모졸(68)은 “어렸을 때 춤을 배우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그러지 못했다”면서 “나이 들어서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춤을 선보일 수 있게 돼 놀라우면서도 기쁘다. 자식들과 손주들이 깜짝 놀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지난 9월초 파리여름축제의 이메일 뉴스레터를 받고 각각 신청했지만 워크숍 기간 동안 친밀한 관계가 되면서 듀엣으로 무대를 꾸미게 됐다.
참가자들 중 상당수는 지난해 안은미가 파리가을축제 등에서 선보인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등 ‘땐스’ 3부작을 보고 신청했다. 젊은 시절 배우 지망생이었다는 새라 마틀론(52)은 “할머니들이 춤추는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안 선생님은 누구보다 관객과 소통할 줄 아는 예술가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작업을 하면서 안 선생님의 긍정적인 피드백 덕분에 나도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했다.
모델을 거쳐 무대의상 디자이너로 일하다 은퇴한 까티 르텔리에(73)는 “아마추어들이 만든 것이라 완성도가 높진 않지만 참가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서로서로 자주 만나면서 가족같은 유대감이 생겼다. 이 공연이 끝난 뒤에도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했다”고 전했다.
파리여름축제가 기획한 ‘1분59초 프로젝트’는 지난해 9월 참가자 신청접수를 시작한지 2주만에 정원 100명을 넘겨 130명이 신청할 만큼 큰 관심을 모았다. 올해 4월부터 워크숍을 시작해 매주 주말마다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음악, 무용, 영상, 즉흥연기 등의 수업이 이뤄졌다. 안은미는 한 달에 한 번은 직접 파리에 가서 참가자들에게 수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안은미는 “한국이나 프랑스나 국적과 관계 없이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진솔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 삶을 짓누르는 각종 틀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이런 작업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도 몰랐던 에너지를 발휘한다”면서 “이런 사람들 각각의 모습은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좌표로써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