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성서학대회 참가 신학자들이 말하는 ‘성서와 상황’> 전문
-현재 한국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 우리는 어떤 성서적 관점을 가질 수 있는가.
△스위니 교수: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의 연구자 중에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분단 상황을 한반도에 비유한 경우가 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도 당시 열강들 사이에서 전략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성경을 읽으며 앞으로 어떠한 상황이 닥쳐올 수 있을 것인지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성경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정치 상황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신학은 기독교적일 뿐 아니라 동시에 한국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고비아 교수: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신학자들은 성서비평가로서 먼저 사회와 문화를 분석할 수 있다. 다음으로 성서와 성서해석의 전통을 분석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맥락에서 세계화란 무엇이며 그 미래는 어떠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러한 질문들은 정치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윤리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서는 십계명처럼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윤리를 담은 텍스트이기도 하다.
-‘상황 속 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뢰머 교수 : 일단 상황 속 신학이라는 것이 생소한 것은 아니다. 남아프리카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식민화를 통해 들어온 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하는 노력들이 있다. 특히 현재의 흑인 억압 아래에서 어떻게 성서를 읽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들이 존재한다. 성서는 누가 읽든 모두 문맥에서 읽을 수밖에 없다. 다른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욕구가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현재 상황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유럽은 다른 배경과 문화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라는 이슈가 존재한다. 30년 전 생각했던 것만큼 그것이 쉽지만은 않더라는 것이다.
전통학자로서 나는 수학도 물리도 국가별로 다른 버전이 있지 않듯이 성서도 방법론이 여러 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읽는 법과 사용하는 법이 보편적일 수 있다. 상황 속 신학을 필연적으로 초래하더라도 전통적인 부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다양한 상황들을 묶어주기 위해서는 전통과 아카데믹한 훈련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맥락이 중요하다. 동시에 엄격해야 한다. 우리의 상황에 맞는, 마음에 드는 신학을 만들고는 그것이 성서에 존재한다고 역으로 성서로 찾아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니다.
-타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적 상황과 맥락을 어떻게 생각하나
△스위니 교수 : 매우 흥미롭다. 국제적 힘이 균형이 아시아로 기울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다르게 아시아에 대해 배울 필요성이 많아졌다. 미국은 그 자체로 다민족 국가이다. 미국 밖의 아시아 문화뿐 아니라 미국 내에 형성되어 있는 한인 사회의 문화 또한 이해하고 더욱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다민족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이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문화와 교류하면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1세기의 상황 속에서 신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뢰머 교수: 성서는 누구든 문맥과 상황 속에서 읽을 수밖에 없다. 현재 유럽은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수학이나 물리가 국가별로 다른 버전이 없는 것처럼 성서 신학의 방법론도 하나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성경을 읽는 것과 적용하는 방법은 보편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상황들을 묶어주기 위해서는 개신교적 전통과 신학훈련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 드는 신학을 만들어 내고는 이것이 성서에 존재한다며, 역으로 성서로 찾아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불안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내재된 경제적 불만족이나 계층간 갈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세계화나 이민자들의 문제와도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성서학자로서 이런 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무어 교수 : 한국에 와서 느낀 점이 있다. 바로 미국의 문화제국주의가 한국을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서울을 돌아보면서 영어 표지판이 가득한 것을 보고 놀랐다. 심지어 한국의 어느 식당에 가도 영어로 된 문구를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당연히 미국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영어가 한국 사회가 지배하고 있듯이 미국의 근본적인 가치, 즉 기독교 문화가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는 미국의 가치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는 거시적으로 세계화의 문제와 연관된 브렉시트 현상과 간접적으로 관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고비아 교수 : 나는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해방신학은 사회와 문화의 분석을 요구한다. 이런 해방신학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성서 신학자들은 성서비평가로서 먼저 사회와 문화를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성서와 성서 해석의 전통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 성서 해석의 적용을 철저하게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브렉시트의 맥락에서 성서비평가들은 세계화가 무엇인지, 그 결과는 무엇이며 세계화의 미래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질문들이 정치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윤리와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윤리는 성서 자체에도 담겨있다. 성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윤리를 담은 텍스트이다. 예를 들어 십계명은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인간에 대한, 그리고 사회에 대한 윤리를 담고 있다.
-세고비아 교수님은 쿠바, 무어 교수님은 남아일랜드 출신으로 식민주의를 경험한 것으로 안다. 그러한 배경이 두 분의 성서 해석의 이해에 영향을 끼쳤나.
△무어 교수 : 나는 신약성서의 배경사를 연구할 때 제국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정치적 측면에서 예수의 죽음은 로마라는 제국에 저항한 피식민지자의 항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종교적이며 영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다 보면 이 점을 간과하기 쉽다.
△세고비아 교수 : 현대에 들어와 기독교가 확대되는 과정을 살펴보자면 서구 사회, 특히 18~19세기의 제국주의 및 식민주의와 크게 맞물려 있다. 이런 관점을 확대하면 성서가 전 세계에 확대 보급되는 과정 자체를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성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물들어 있는 것이 문제가 된다. 바로 이 점에 착안해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성서학의 연구가 요구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성서학 연구가 어떻게 최근에 변화되어 왔는지 간략하게 설명해 달라.
△무어 교수 : 나는 더블린대에 소속된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마쳤다. 당시 성서학 연구는 오로지 성서를 철저히 역사적 관점에서 성서 텍스트가 만들어졌을 당시의 상황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성서가 말하는 의미를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성서연구의 유일한 방법론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많은 성서 연구자들은 성서 자체의 역사성에 매몰돼, 성서 본문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서 연구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성서의 원래적 의미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으려면 우리가 처한 상황에 근거해 성서를 이해해야 한다는 새로운 성서 연구 방법론이 대두한 것이다.
△세고비아 교수 : 그렇다. 이번 세계성서학회의 기조문에서도 잘 논의됐듯이 상황화 성서신학 (Contextual Biblical Interpretation)은 성서와 우리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 예를 들면 성 인종 힘의 불균형 경제적 불평등 환경 위기와 같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한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상황화 성서신학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서가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의 여러 문제에 성서학과 신학이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학문이 사람들에게서 외면을 당하고 있고, 모두가 생존만을 찾으려 한다.
△스위니 교수: 현 상황에서 생존이 최우선 과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소통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사야 6장을 보면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려 회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대목이 있다. 이사야는 그 상황에서 그저 ‘어느 때까지이니까’를 질문할 뿐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 할 때에 아브라함이 의인을 구하며 ‘도덕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모세 역시 이스라엘 민족을 멸하려 하시는 하나님께 목소리를 냈다. 우리 역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세월호의 비극에 대하여 신학자로서 말해줄 수 있는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스위니 교수 : 유대교에서 기독교와 다르게 가르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자유의지이다. 사람은 그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세월호 사건에 있어서 나의 입장은 선박을 출항시키는 준비에 있어서 모든 절차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실수들이 많았다. 누군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많은 아이들을 잃게 되었다. 우리가 여기서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사야 6장이 떠오른다. 우리의 역할은 배를 책임졌던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그 책임자들에게 다시는 이러한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뢰머 교수 : 세월호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할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마치 뒤늦게 진상조사가 시작돼 죽기 직전의 노인을 꼭 재판대에 올려야 하는가에 대한 반론이 나온다 치자. 교회는 이에 대해 세월호 사건은 단지 한 사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임’에 대한 문제를 추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잊지 말자 정도가 아니라, 이것이 일어나도록 한 책임자가 누구인가라는 묻는 것도 중요하다.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의의 실현도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홀로코스트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독일 배경의 학자로서, 전쟁 이후의 일본과 독일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독일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뢰머 교수 : 독일과 일본은 매우 다른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기억난다. 초등학교 시절 다니던 장소에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유대인 아이를 위협하는 독일 군인들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있었다. 나는 이 사진을 매일 보아야 했고 약간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하지만 독일이 집단적 죄책감을 가지고, 세대를 뛰어넘어 그 역사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자란 것에 감사하고 있다. 아직까지 오스트리아는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다음세대에 교육하고 배우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독일에서 다시 파시즘에 경도된 사람들이 10%를 넘고 있다. 모두들 독일에서만큼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파시즘은 유대인이 아니라 무슬림을 겨냥한 것이라 충격적이다.
-신자들은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뢰머 교수: 우선 성서에서 몇 구절을 뽑아 자기 합리화를 위해 인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텍스트가 쓰인 문맥을 알아야 하며, 그 문맥이 더 이상 우리의 문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구절만 읽어서도 안 된다. 성경은 위키피디아처럼 여기저기 자료를 짜깁기한 책이 아니다. 우리는 성경 자체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어온 아주 긴 인류의 역사의 일부분이고 성서를 읽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각자 성경 읽는 법을 찾아야 한다.
△무어 교수: 성서를 비판적 관점에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무비판적으로 성서를 읽을 경우 자신의 편견을 마치 성서의 그것으로 오해하기 쉬우며, 그 결과물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식민지 시대에 성서의 정복관이 미국의 원주민을 학살하는 기제로 사용된 사례가 그렇다. 우리는 편견에서 벗어나 성서가 말하는 진정한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 자신에게 비평의 메스를 대야 한다.
△세고비아 교수: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성경읽기 모델과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성서를 하나의 이야기로 보는 ‘서사비평(narrative criticism)’을 강력히 추천한다. 성서는 여느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스토리 플롯 인물 시점 배경 같은 서사적 요소를 갖고 있다. 마치 설교가 하나의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서를 이야기로 이해함으로써 성서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자세히 읽기(closer reading)’가 가능해진다.
*번역 도움 : 연세대 신과대 강하영, 김내영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세계성서학대회 학자들이 말하는 '성서와 상황' 전문
입력 2016-07-21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