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와 맨발 차림의 초등학생들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습니다. 물을 연신 마시다가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았는지 한 아이는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떨구고 맙니다.
18일 열린 ‘2017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의 성공개최 염원하는 행사장의 모습입니다. 수백 명의 초등학생들이 리허설을 위해 푹푹 찌는 무더위 속 아스팔트 위에 1시간 넘게 서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300여명이 리허설 명목으로 본 행사 30분 전인 오후 4시30분부터 도로 위에 대기해야했던 탓입니다. 당시 전주지역 기온은 29.1도였지만 한낮 동안 데워진 아스팔트 위의 체감 온도는 훨씬 무더웠습니다.
두꺼운 도복에 운동화조차 제대로 신지 못한 초등학생들이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연신 신음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행사 관계자들은 “오와 열을 맞춰라. 줄이 맞지 않으면 행사를 진행할 수 없다”며 바른 자세로 서 있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행사 시작 전까지 뜨거운 도로 위에서 품새와 격파연습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행사는 애초 예정보다 늦어진 오후 5시25분에 시작해 6시에서야 마무리됐습니다. 수백명의 초등학생들이 오후 4시30분부터 6시까지 1시간30분 동안 그늘에서 쉬지 못하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괴로워한 것입니다. 이를 본 시민들도 “어른들도 땀이 뻘뻘 나는데 아이들을 왜 동원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참 못할 짓을 하고 있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를 본 네티즌들 역시 “군인들도 땡볕에는 작업 안 시킨다. 그것도 맨발에 아스팔트가 말이 되느냐” “기획한 사람들이 2~3시간씩 서 있어 봐야 한다” “자기 자식도 저렇게 세워놓을 수 있었을까”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도 아이들에게 가혹한 행위를 하더니 여전하네요 ” 등 아이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행사에는 송하진 전북도지사와 황정수 무주군수 등 지역 인사와 도복을 입은 일반인과 대학생, 초등학생 등 2000여명이 참여했습니다. 조직위 관계자는 “초등학생들의 특성상 대열을 맞추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오래 리허설을 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