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79>기독교 영화

입력 2016-07-18 17:14

할리우드에 조그만 물결이 일고 있다. 기독교영화의 물결이다. 테이프는 지난해 개봉된 ‘워 룸(War Room)’이 끊었다. 앨릭스 켄드릭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겉보기에는 완벽한 흑인 가족이 실제로는 부부간 불화 등 많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가 신을 상징하는 현명한 노부인의 도움과 기도, 그리고 신앙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다. 유명 스타 한 사람도 없이 고작 300만달러의 제작비로 미국에서만 678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그에 앞서 대박을 터뜨린 기독교 영화가 있다. 2014년 3월에 개봉된 ‘신은 죽지 않았다(God’s Not Dead)’이다. 기독교신자 대학생이 무신론자 철학교수에 맞서 신의 존재를 옹호한다는 이 영화는 해롤드 크롱크 감독이 ‘단돈’ 200만달러를 들여 만들었으나 6200만달러를 벌여들였다.

이처럼 기독교영화가 ‘장사가 된다’는 판단이 서자 할리우드가 기독교영화에 뛰어든 것. 이에 따라 이미 개봉했거나 개봉할 영화들이 줄을 섰다. 우선 올 2월(이하 미국 기준) 개봉한 ‘부활(Risen)’. 예수의 부활을 비신자(로마 군인)의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다. 조지프 파인스가 로마의 호민관으로 나와 십자가에서 처형된 뒤 사라진 예수의 행방을 좇는다. 재미있는 것은 예수역으로 검은 피부의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출신인 클리프 커티스가 출연했다는 점. 과거 할리우드 영화에서 예수라면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창백한 피부의 백인, 예컨대 ‘왕중왕(1961,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제프리 헌터나 ‘위대한 이야기(The Greatest Story Ever Told, 1965,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맥스 폰 시도, 또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Last Temptation of Christ, 1988, 마틴 스코세지 감독)’의 윌렘 데포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 2004, 멜 깁슨 감독)’의 짐 카비젤 같은 배우들이 맡았던 것과는 딴판이다. 이 같은 ‘진보적’ 배역은 다른 기독교영화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가 올 3월에 개봉한 ‘어린 메시아(Young Messiah)’다. 흡혈귀 소설로 유명한 앤 라이스의 원작소설을 사이러스 나우래스티 감독이 연출했다. 성경 등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7살 어린 예수의 행적을 가공으로 엮었다. 이 영화에서 예수역은 당연히 어린 소년인 애덤 그리브스 닐이 맡았다. ‘소년 예수’라니 기존 할리우드에서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세 번째는 역시 올 3월에 개봉해 7월까지 6160만달러를 벌어들인(제작비 1300만달러) ‘하늘로부터의 기적(Miracles from Heaven)’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패트리셔 리겐 감독이 영화화했다. 불치병에 걸린 10살 소녀가 끔찍한 사고를 겪은 뒤 오히려 병이 나아 의료진조차 어리둥절해했다는 이야기인데 이를 종교적 기적으로 묘사했다. 제니퍼 가너가 소녀의 엄마로 주연했다.

네 번째는 올 5월 개봉한 ‘사막에서 보낸 마지막 나날들(Last Days in the Desert,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이다. 예수가 광야에서 40일을 보내면서 악마의 유혹과 협박에 시달리며 시험 받는 사건을 영화화한 것. 영화에서 예슈아로 불리는 예수역은 유안 맥그리거가 맡았다. 특이한 것은 맥그리거가 예수를 괴롭히고 유혹하는 사탄으로도 출연했다는 점. 1인2역치고는 참으로 독특한 1인2역이다. 신과 악마를 한 사람이 연기했으니.

그 다음은 아직 개봉하지 않은 것들이다. 우선 8월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벤허’. 그렇다. 찰턴 헤스턴 주연에 윌리암 와일러가 연출한 그 고전 걸작의 리메이크작이다. 원작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추가했다는 게 제작진의 말이지만 와일러판 벤허의 근간이었던 루 월러스의 원작 소설이 바탕이 된 것만은 틀림없다. 벤허역은 원래 물망에 올랐던 톰 히들스턴 대신 신예 잭 휴스턴이 맡았다. 그는 거장 존 휴스턴의 손자다. 또 원작 소설의 부제가 ‘그리스도 이야기(A Tale of Christ)’라는 데서 보듯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예수역은 ‘300(2006, 잭 스나이더 감독)’에서 기묘한 분장을 하고 크세르크세스 대제로 나와 유명해진 브라질 배우 로드리고 산토로의 몫이 됐다. 산토로는 예수역을 맡으면서 프란치스코 로마 교황으로부터 개별적으로 축복을 받기도 했다고.

다음 타자가 내년 3월 개봉 예정인 ‘오두막(The Shack)’이다. 스튜어트 헤리즐린이 감독하고 샘 워딩턴이 주연한 이 영화는 막내딸을 유괴 살해당하고 비탄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딸이 살해된 오두막으로 오라는 초대를 받는다. 초대자는 신(神). 그는 여기서 신을 만나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재미있는 것은 신이 3위(位)의 존재로 나타난다는 것. 성부, 성자, 성령. 남자가 누가 신이냐고 묻자 셋이 함께 답한다. “나다.” 이 영화에서도 배역이 특이하다. 우선 하느님인 성부는 흑인 여자(옥타비아 스펜서)다. 남자의 모습으로도 나타나는데 이때 남자 하느님을 맡은 배우는 아메리카 원주민(그레이엄 그린)이다. 또 성령은 동양여자(마쓰바라 스미레)다. 성자, 곧 예수만 ‘상식적’인데 이스라엘 배우 아비브 알루쉬가 예수역을 맡았다.

마지막으로 역시 내년 개봉 예정인 ‘마리아 막달레나’가 있다. 가스 데이비스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아직 스토리가 공개되지 않았다. 그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라는 것밖엔. 다만 출연진은 확정됐는데 이 역시 특이한 구석이 있다. 예수의 12 제자 중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초대 교황’ 베드로를 흑인배우(치웨텔 에지오포)에게 맡긴 것. 유대인 어부가 흑인이라. 이에 비하면 타이틀 롤이나 예수역은 그나마 덜 튄다. 즉 마리아 막달레나역에는 베스트셀러 소설 ‘용 문신을 한 소녀’를 영화로 만든 시리즈의 주역으로 유명한 루니 마라, 그리고 예수역에는 중견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기용됐다.

이처럼 기독교영화들이 자그마한 붐을 이루고 있는 배경을 ‘신앙에 따른 소비’재단의 설립자인 크리스 스톤은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에 기독교가 수그러든 것 같지만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이 크리스천이기 때문이라고. 그에 따르면 미국인 가운데 70%는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정체성을 밝히고 있고, 60%는 비록 형식적으로나마 기독교의식을 행하고 있으며, 특히 17%, 즉 4100만명은 기독교를 일상생활의 지침으로 삼고 있어 무슨 일을 하고 뭘 먹고 무슨 영화를 볼지 따위를 결정하는데 기독교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 그러다보니 기독교영화가 ‘장사가 된다’는 것인데 언필칭 1200만 기독교신자가 있다는 한국의 사정은 어떤지 모르겠다.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