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지위를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부정축재를 저지른 진경준(49·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검사장이 구속 수감됐다. 현직 검사장의 구속은 1948년 대한민국 검찰 창설 이래 최초의 사례다. 법무부와 공직자윤리위원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검증 체계가 마비됐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이금로 특임검사팀은 17일 특가법상 뇌물, 제3자 뇌물수수 등 혐의로 진 검사장을 구속했다. 진 검사장은 2006년 11월 넥슨 측으로부터 넥슨재팬 주식 8537주를 무상 취득해 결국 120억원이 넘는 차익을 거둔 혐의다. 2008년 3월 넥슨의 법인 리스차량 제네시스를 처남 명의로 넘겨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직접 내사하던 한진그룹 계열 대한항공이 처남의 청소용역업체에 용역을 몰아주게 해 130억원대 매출을 올리게 한 혐의도 영장에 포함됐다.
검찰 역사상 첫 현직 검사장의 구속 사태에 법무부 장관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국민들께 크나큰 충격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위직 검사가 상상할 수 없는 부정부패 범죄를 저지른 점에 대하여 부끄럽고 참담할 따름”이라고 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18일 전국 5개 고검장과 대검찰청 차장, 법무연수원장, 서울중앙지검장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고 내부청렴 강화 대책을 논의키로 했다. 김 총장도 회의에서 대국민 사과를 표명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진 검사장은 지난 16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포기했다. 그는 20년 전인 1996년 서울지검 형사부 평검사 시절 통일호 열차표 1장을 4000원 비싼 값에 암표로 판 40대 회사원을 구속 기소했었다.
-검증 손 놓은 법무부·청와대 책임론 부각, 남은 수사 쟁점 3가지-
진경준 검사장이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을 담당한 법무무·청와대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김현웅(57) 법무부 장관은 17일 진 검사장 사건과 관련 인사검증 및 감찰 시스템 등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주식 특혜 논란이 벌어진 후에도 진 검사장 관련 진상파악에 소극적이었던 법무부의 만시지탄(晩時之歎) 이라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승승장구 진경준, 검증 시스템은 깜깜
진 검사장은 소위 ‘잘나가는 검사’였다. 그는 1995년 사법연수원 21기 검사 중 가장 우수한 임관 성적으로 서울중앙지검에 배치됐다. 이후에도 금융정보분석원(FIU) 파견, 법무부 검찰과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진 검사장이 대학 동기인 넥슨 창업주 김정주(48) NXC 회장으로부터 넥슨 비상장 주식을 공짜로 받은 2005년에도 그는 법무부 검찰국 소속이었다.
진 검사장은 2007년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 나갔다. 복귀 직후인 2008년 3월 넥슨으로부터 문제의 제네시스 차량을 제공받는다. 당시 검찰 주변에서는 “진 검사가 기업인한테 차량을 받아 몰고 다닌다”는 얘기가 돌았다. 진 검사장은 2009∼2010년 서울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한진그룹 탈세 의혹을 내사 단계에서 덮어준 대가로 처남 소유 청소용역업체가 일감 수주 특혜를 누리도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검찰과 법무부는 10년 넘게 진 검사장 비위 사실을 자체적으로 걸러내지 못했다.
청와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진 검사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 자리에 올랐다. 차관급인 검사장은 승진에 앞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철저한 인사검증을 거친다. 재산증식이나 사건 처리과정이 주요 검증 항목이다. 그러나 진 검사장은 아무 문제없이 인사검증을 통과했다.
진 검사장 의혹이 본격 불거진 이후에도 법무부는 ‘제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 지난 3월 진 검사장의 주식 대박 의혹이 불거지자, 법무부는 “진 검사장 개인의 문제”라며 침묵했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담당해야 할 일이라며 자체감찰에도 나서지 않았다. 그 사이 진 검사장은 주식매입 자금이 개인 돈이라고 해명했다가 처가 돈이라고 말을 바꾸는 등 국민을 상대로 뻔뻔한 거짓말을 계속했다. 공직자윤리위가 5월 17일 ‘거짓 소명’을 이유로 징계 의결을 요구한 뒤에야 법무부는 대검찰청에 진 검사장에 대한 검찰총장의 징계 신청을 요청했다.
진 검사장 재산 몰수 가능성
법원이 진 검사장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면, 진 검사장은 징역형과 함께 재산을 몰수당할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에 따라 검찰이 뇌물로 본 10억원의 추징이 가능하다. 이 돈으로 벌어들인 시세 차익 126억원도 범죄로 얻은 불법 수익으로 판단해 환수할 수 있다. 진 검사장이 126억원 가운데 일부를 다른 주식에 투자했거나 부동산을 매입했다면 그 역시 몰수 대상이다.
진 검사장이 처남 명의로 청소 용역회사를 통해 대한항공으로부터 따낸 일감 134억원도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이 적용될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일감 받은 부분에 있어서 대가성이 인정되면 이 역시 추징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다만 134억원 전체 금액을 대상으로 할지는 구체적으로 따져볼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대가성이 인정돼도 청소용역 근로자들에게 지급된 임금과 운영비 등은 몰수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이금로 특임검사팀은 17일에도 구속된 진 검사장을 불러 조사를 계속했다. 주요 수사 사안은 넥슨 이외의 차명주식 소유 의혹과 한진그룹 관련 내사 개입 의혹 등이다. 진 검사장은 2011년 보안업체 P사의 주식을 차명 소유했다가 지난해 처분해 수억원대 시세차익을 거뒀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진 검사장이 한진그룹 관련 내사를 종결하는 과정에서 실제 부당 행위가 있었는지 등도 수사대상이다. 특임검사팀 관계자는 “구속된 진 검사장을 대상으로 제기된 다양한 의혹들에 대한 확인 조사를 하고 있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범죄사실이 추가될 수 있다”고 밝혔다.
노용택 이경원 황인호 기자 nyt@kmib.co.kr
‘檢 역사상 첫 현직검사장 구속’ 진경준, 재산몰수 가능성도
입력 2016-07-17 1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