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공연에서 분명히 울 거에요. 제가 감수성 넘치고 눈물 많은 성격이잖아요. 하지만 후회와 아쉬움이 아닌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겠죠.”
16일(현지시간) 독일 남부 도시 슈투트가르트의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에서 만난 강수진(49) 국립발레단장은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강 단장은 오는 22일 이곳에서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발레 ‘오네긴’을 끝으로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한다.
지난해 11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내한공연으로 한국 고별 무대를 가졌던 그는 “지난해 공연이 한국 관객을 향한 감사인사였다면 이번 무대는 30년간 나를 키워준 슈투트가르트 관객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다. 슈투트가르트는 나에게 많은 것을 준 도시였고, 이곳 극장은 내게 집이자 꿈을 이뤄준 ‘매직 하우스’였다”면서 “나는 발레리나로서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살았다. 살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만큼 보답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충분한 보답을 받았다. 게다가 이번 무대는 국립발레단 단장 취임과 함께 은퇴를 예고한 이후 줄곧 기다렸던 만큼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한국 발레계의 해외 진출 1세대인 그는 누구보다 먼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무용수의 반열에 올랐다. 1982년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나 85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며, 8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군무로 입단해 96년 마침내 수석무용수의 자리에 올랐다. 99년 ‘무용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과 명예를 안았다.
그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입단은 내 생애 최고의 선택이었다”면서 “로잔 콩쿠르 우승 직후 미국 쪽에서도 제안이 있었지만 당시 어머니나 다름없는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모나코 발레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못가게 하셨다. 내 기량은 물론 성격을 잘 아는 선생님은 대신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입단 오디션을 치르라고 권하셨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가 발레단에 입단한 뒤부터 바로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적응을 잘 못해서 부상이나 체중관리 실패 등으로 2년간 무대에도 서지 못했다. 그가 군무에서 솔리스트가 된 것도 입단 7년만이었다. 그는 “자기관리를 못해 무대에조차 서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면서 너무 괴로웠다. 발레단을 그만두고도 싶었지만 그런 모습으로 한국에 돌아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정신 차리고 독하게 연습을 시작하니 그때부터 사람들이 나를 봐주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대기만성형이었던 그는 나이를 먹을수록 안정된 기량과 원숙한 연기력을 뽐냈고 어느새 발레단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오랫동안 군무 생활을 한 것이 내가 지금까지 무대 위에 설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됐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내 배역에 충실하다 보니 어느새 발레리나로서 성장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브누아 드 라당스 상을 받은지 얼마 안돼 정강이 스트레스 골절이 심해져 1년 넘게 무대를 떠나야 했다. 그는 “오랫동안 통증에 시달렸지만 무용수로서 의례적으로 겪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처음 스트레스 골절이 왔을 때 의사가 6주 정도 쉬라고 했는데, 마침 오랫동안 꿈꿔온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주역으로 발탁됐다. 당시 그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발레단에 부상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 무대에 섰고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계속됐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욕심을 부렸지만 당시 내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물론 그렇게 5년 정도 지나자 통증이 심해 걸을 수 없을 정도까지 되어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재활훈련을 하면서도 과연 내가 다시 무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안했다. 대부분의 무용수들이 복귀에 실패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남편(툰치 소크만)의 위로와 도움으로 절망의 시기를 견뎌낸 그는 마침내 2001년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무용수의 숙명같은 자잘한 통증을 달고 살지만 이후 그가 부상으로 무대를 떠나는 일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국립발레단 단장 취임은 무대와의 작별을 준비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발레리나로서 춤을 출 만큼 췄다. 솔직히 아직도 몇 년은 더 춤을 출 수 있을 만큼 몸 상태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제 후배들에게 내가 축적해온 발레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다. 또 나를 위해 희생해온 남편에게 아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서 “무용수 시절엔 늘 긴장 상태라 잠을 제대로 잔 적이 거의 없다. 은퇴하면 잠을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은퇴 공연 이후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집을 처분할 예정이다. 내년 1월 임기가 만료되는 국립발레단 단장 연임 여부와 상관없이 완전히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서다. 그는 “오랫동안 해외에 머물면서 한국 생활을 그리워 했다. 국립발레단 단장에 취임하면서 2년 넘게 한국 생활을 하다보니 떠나기 싫어졌다. 다행히 남편도 나보다 한국생활을 더 좋아한다”면서 “한국 발레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 발레리나로서 무대에서 내려오지만 발레와 관련한 또다른 ‘제2의 인생’이 기대된다. 사실 국립발레단 단장을 맡으면서 이미 ‘제2의 인생’은 시작됐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