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국무총리가 15일 오전 11시40분부터 오후 5시 40분까지 6시간 성난 성주 군민들에게 계란과 물통 투척 사례를 받고, 그가 탄 버스는 옴짝달싹 못한 채 갇혀 있었다. 국무총리가 봉변을 당한 건 1991년 6월 정원식 당시 국무총리가 한국외국어대 학생들에게 달걀과 밀가루 세례를 받은 이후 25년 만이다.
황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56분 경북 성주군청에서 열린 주민설명회에 찾았다. 그는 "엊그제 사드 배치 발표를 들으셨을 때 얼마나 놀라셨을지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저도 이 자리에 섰다"며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 번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금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핵 도발을 하고 있다. 국가의 안위가 어렵고 국민의 생명과 신체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서 국가로서는 이에 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조금이라도 안전에 문제가 있다면 정부가 이걸 할 수가 없다, 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주 군민 여러분 죄송하고 거듭 죄송하다"고 말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이날 함께 현장을 찾아 "성주군민 여러분께 미리 설명 드리고 이해와 협조를 구하지 못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3000여명의 주민들은 황 총리와 한 장관의 발언 중에도 "북한 핑계 대지마라", "물러가라", "사드 배치 결사 반대", "네가 여기 살아라", "책임져라", "입만 열지 말고 행동을 해라" 등 주민들의 항의성 발언이 계속 이어졌다. 주민들의 거센 항의로 황 총리의 발언이 끊겼고, 황 총리가 물병과 계란에 맞기도 했다. 일부 주민들은 황 총리 등에게 가까이 접근하려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주민설명회는 오전 11시35분께 중단됐다. 주민들의 물병·계란 세례가 심해지면서 황 총리 등은 군청사 안으로 대피한 뒤 미리 준비된 차량으로 서둘러 몸을 피했다. 일부 주민들이 청사 안으로 진입하려다 경호원들과 뒤엉키기도 했다. 황 총리 등이 탑승한 차량은 오후 1시30분까지 2시간 넘게 주민들에게 막혀 움직이지 못했이다. 주민들은 물병과 계란 등을 차량에 던지면서 황 총리가 직접 나와 사드 결정 철회를 약속할 것을 계속 요구했다.
황 총리가 이날 성주를 방문한 건 전날 밤 늦게 결정됐다고 한다. 당초 한 장관이 다음주께 성주를 찾아 주민들을 만날 예정이었으나, 지역 여론이 좋지 않고 사드 배치와 관련한 여러 논란이 괴담 수준으로 번지고 있어, 이를 차단하기 위해 황 총리가 직접 방문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무총리가 봉변을 당한 건 지난 1991년 6월 국무총리 서리에 내정되면서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마지막 수업하러 간 정원식 당시 총리가 대학생들의 밀가루·달걀 세례를 받은 ‘6·3 외대 사태’가 대표적이다.
그해 4월 명지대학교 강경대 학생이 경찰의 구타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데 이어 5월엔 대학생 10여명이 분신을 택하는 이른바 ‘분신 정국’이 최고조에 이르던 때였다. 이 사태로 노재봉 총리가 사퇴하자 후임으로 임명된 정 총리는 학생들로부터 20여분간 온몸에 밀가루와 달걀 세례를 받았다. 이 사건을 빌미로 반정부 여론은 반전됐고 학생운동권의 민주화 투쟁은 동력을 잃었다.
【편집=정재호, 서울·성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