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품한다. 고로 존재한다” 반품시대, 한숨도 가득

입력 2016-07-15 00:04

지난 9일 찾은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초입의 ‘온라인 쇼핑몰 반품샵’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서너 평 남짓한 가게 안에서 사람들은 가전제품, 식료품, 의류, 장난감, 화장품 등을 고르느라 분주했다. 회사원 최모(34·여)씨는 화장품 세트 앞에 멈춰 서서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인터넷 최저가는 2만6000원. 2만원이라고 적힌 가격표를 보며 잠시 망설이다 눈을 돌렸다. 최씨는 “주로 온라인으로 쇼핑하는데, 반품된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 가게를 찾았다”고 말했다.

‘반품의 시대’가 왔다. ‘일단 지른다. 다음에 반품한다’는 쇼핑 행태가 대세가 됐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클릭 몇 번이면 집 앞으로 물건이 배달된다. 손쉬운 쇼핑만큼 반품도 쉽다. 배송비 2500원가량만 부담하면 반품이 가능하다. 배송비마저도 받지 않는 쇼핑몰도 많다. 반품된 상품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점이 생길 정도다.

우정사업본부는 우체국택배의 반품 물량이 2012년 255만1000통에서 지난해 361만7000통으로 크게 늘었다고 14일 밝혔다. 같은 기간 전체 택배 중 반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에서 2.6%로 증가했다. 우체국택배의 시장점유율(7.7%)를 감안하면 지난해 전체 택배시장에서 4700만통 정도가 반품된 것으로 추산된다.

반품이 일상화되면서 반품 배송비를 아끼려는 ‘꼼수’도 늘고 있다. 트집잡기는 기본이다. 단순 변심에 따른 반품은 배송비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없는 하자’를 억지로 만드는 것이다. 의류의 경우 ‘실밥이 터졌다’ ‘옷에 구김이 많다’ ‘남이 입은 것 같다’는 사소한 트집이 주요 레퍼토리다.

고민 없이 일단 골라 담은 뒤 반품하는 경우도 잦다. 일정 금액 이상 묶어 사면 배송비가 무료인 점을 노린 것이다. 어차피 내야 할 배송비 대신 반품 배송비를 부담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다보니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일단 구입한 뒤에 반품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주부 정모(37·여)씨는 신발은 235㎜와 240㎜, 옷은 55와 66사이즈를 늘 함께 구매한다. 맞지 않는 제품은 택배 상자에 담아 반품한다. 정씨는 “홈쇼핑에서도 ‘일단 입어보고 맞지 않으면 반품하라’고 광고하는데 문제될 건 없다”고 말했다.

반품 증가로 ‘한숨’을 쉬는 이들도 늘고 있다. 택배 기사 한모(55)씨는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을 때면 밀린 택배 생각에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반품 택배를 접수한 뒤 반품 교환증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비원 서모(70)씨가 근무하는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은 택배 상자로 가득하다. 배송비를 대신 내달라며 5000원을 쥐어주고 가는 입주민도 있다고 했다.

오픈 마켓에서 주방용품과 가전제품을 파는 김모(41)씨는 지난달부터 반품 배송비를 2만원으로 책정했다. 단순 변심에 따른 반품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김씨는 “소비자원에 신고하겠다는 이들도 있다”며 “반품이 줄긴 했는데 매출도 줄어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