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이 괴물 됐다’ 딜레마 빠진 단톡방

입력 2016-07-14 00:09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김용철)는 지난달 10일 대학생 김모씨에게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학교 징계위원회가 자신에게 내린 무기정학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었다. 김씨는 2013년 같은 학교 남학생 10여명이 함께 있는 모바일메신저 단체대화방(단톡방)에서 여학생 3명을 겨냥해 음담패설을 한 것이 드러나 징계를 받았다. 그는 ‘남학생들만의 제한된 대화 공간에서 발언을 했고, 피해자에게 직접적으로 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성희롱이나 모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단톡방에 있는 모두가 김씨의 대화에 동조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발언 내용이 언제든지 외부로 알려질 수 있었다”며 “전파 가능성을 고려하면 문제의 발언들은 형법상 모욕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전파 가능성(공연성)이 있기 때문에 ‘단톡방 대화’를 완전한 사적 대화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은밀하지 않은 단톡방

‘단톡방 성희롱’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지난해 2월 국민대에 이어 지난달에는 고려대 남학생들이 단톡방에서 성희롱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민대는 주도적이었던 학생 6명을 무기정학(2명)과 근신(4명)으로 징계했다. 고려대는 교무부총장 산하에 특별대책팀을 꾸려 비공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서울대에서 ‘단톡방 성희롱’이 불거졌다. 서울대 총학생회 산하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는 인문대 학생들의 단톡방에서 있었던 성희롱 발언을 고발하는 대자보를 게시했고, 현재 서울대는 진상 조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단톡방은 물리적으론 제한된 공간이다. 하지만 아주 은밀한 공간도 아니다. 고려대의 경우 내부 고발자가 있었다. 국민대와 서울대의 경우는 피해자들이 우연하게 ‘단톡방 성희롱’ 사실을 알아냈다. 피해자들이 모욕죄나 명예훼손으로 가해자들을 고소하면 처벌이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판단이다. 다만 아직까지 세 학교의 피해 여학생들이 법적 대응을 한 상태는 아니다.

‘괴물’이 되는 사람들

단톡방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괴물’이 된다. 성희롱, 사이버 집단따돌림은 물론 허위사실 유포를 스스럼없이 저지른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뒤 ‘유가족들이 세금으로 과도하게 많은 보상금을 받는다’는 유언비어가 여러 단톡방으로 통해 무차별적으로 유포됐다. 지난달 30일에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다는 ‘지라시’가 단톡방을 타고 퍼졌다. 현재 삼성의 수사의뢰를 받은 경찰은 최초 작성자를 찾고 있다.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도 심각하다. 지난 9일 새벽 1시쯤 지방의 한 아파트에서 고등학생 A양(17)이 투신했다가 1층 차양막 위에 떨어져 목숨을 건졌다. A양은 단톡방에서 같은 반 친구들이 욕설을 하거나 거짓말을 퍼뜨리는 등 집단따돌림을 당했다는 유서를 남겼었다. 서울의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형사는 “단톡방에 불러놓고 욕을 하거나 반대로 한 사람만 따돌리고 채팅방을 만드는 방식의 학교폭력은 은밀하게 이뤄진다. 당사자가 아닌 주변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화지체’ 현상…“새로운 규범 필요”

전문가들은 기술 발달로 바뀐 환경을 그 기술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지체’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단톡방에 글을 남기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단톡방은 개인의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 공개된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13일 “단톡방은 공개된 공간임과 동시에 사적 공간이라는 특성을 동시에 갖는다. 글을 남기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사적공간이라 하더라도 성희롱 발언이나 시대착오적 발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형적인 문화지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배은경 교수는 “여성에 대한 대상화를 통해 남성들끼리 유대감을 만드는 문화적인 행태는 굉장히 오래된 일인데, 지금은 이것이 증거로 남기 시작했다”며 “법적인 문제 이전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차원에서 앞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는 단톡방에서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