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낙원이 있다면 여기일까. 노르웨이 피오르드는 북유럽에서 손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설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 해마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는다.
한데, 이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난다면? 거대 쓰나미까지 밀려온다면? 천국에서 지옥으로 변해버린 그 처참한 현장을 영화 ‘더 웨이브’는 고스란히 담아낸다.
지진 통제센터에서 일하던 지질 연구원 크리스티안(크리스토퍼 요너)은 대도시로 이직하면서 오래 터 잡고 산 피오르드를 떠나게 됐다. 가족과 함께 이사 준비를 마치고, 동료들과도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삿짐을 싸들고 배를 타러 가던 길, 그는 심상찮은 징후를 감지한다. ‘이건 분명 산사태다.’
크리스티안은 한달음에 통제센터로 돌아가 상황을 살폈다. 산속에 설치된 탐지에게서 이상 데이터가 감지됐다. 비상경보를 울리자고 동료들을 설득했지만 “관광 시즌이 시작됐는데 괜한 혼란만 가중할 것”이란 반대에 부딪힌다. 더 이상 직원 신분도 아닌 크리스티안은 반박하지 못하고 물러섰다.
호텔 직원인 아내 이둔(아네 달 토르프)은 인수인계를 마무리하기 위해 남아있었다. 예정대로 떠나지 않고 돌발행동을 한 남편에게 화가 나지만 별 수 있나. 가족은 마을에서 하룻밤 더 묶게 됐다. 크리스티안은 정든 집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는 딸 율리아(이디스 하겐루드 산드)를 데리고 빈집으로 향했다. 아내와 아들 산드레(조나스 호프 오브테브로)는 호텔에 남기로 했다.
평온했던 밤의 정적은 순식간에 깨졌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지층의 수축 균열이 발생하기 무섭게 산이 무너져내려기 시작했다. 산사태로 인해 시속 600㎞의 쓰나미가 발생했다.
남은 시간은 10분. 그 안에 해발 800m 이상의 고지대로 올라가야 한다. 크리스티안은 가족을 구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 호텔에 있는 아내·아들을 데리러 가기는 불가능한 상황. 일단 딸을 대피시킨 그는 아내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간다.
영화는 실제 피오르드 지역에서 1905·1934·1936년 세 차례 일어난 재난 상황을 바탕으로 했다. 당시 산사태와 쓰나미로 인해 수백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지역 지질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현재까지 매년 15㎝ 가량의 수축과 팽창이 반복되고 있단다.
언제든 재발 가능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영화는 한층 섬뜩해진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 극한 상황에서 결국 고개를 드는 인간의 이기심도 그렇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무리만큼은 지극히 영화적이다. “그래 이건 영화야.” 아주 잠깐 동안은 안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4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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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