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좀비물이 나왔다. 실사영화 초짜 감독이 생소한 소재를 붙들고 야무지게도 빚어냈다. 영화 ‘부산행’에 탑승하는 당신, 아마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할 것이다.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됐던 부산행은 12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국내에 첫 선을 보였다. ‘돼지의 왕’(2011) ‘서울역’(2015) 등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마치 질주하는 KTX 같다.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멈추지 않고 힘 있게 내달린다.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상황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 좀비들의 습격이 시작된다. 뜻하지 않은 재난에 맞닥뜨린 사람들은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그 안에는 우리 사회에 대한 싸늘한 일침도 담겼다.
시사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 감독은 “등장인물들의 행동패턴이 일상적이고 보편적이길 바랐다”며 “전작들에서도 그랬듯 난 ‘위’보다 ‘아래’ 계급에 있는 사람들의 드라마를 좋아한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담당한 공유는 “아직 우리나라에선 생소할 수 있는 소재지만 많은 관객이 볼 수 있는 기획영화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웠다”며 “연 감독에 대한 기대와 좋은 배우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극 중 공유는 이혼 위기에 처한 펀드 매니저이자 딸을 둔 아빠로 등장한다. 이들 부녀와 함께 부산행 KTX에 탄 사람들이 있다. 출산이 임박한 아내(정유미)와 자상한 남편(마동석), 고교 야구부원(최우식)과 그를 짝사랑하는 응원단장(안소희), 그리고 이기적인 고속버스 회사 사장(김의성) 등이다.
정유미는 “마동석 오빠와 호흡이 잘 맞았다”며 “제 부족한 부분까지 잘 받아주셔서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나 싶다. 너무 좋았다”고 웃었다. 마동석은 “아내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남자의 모습이 보편적으로 공감할만한 정서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들과의 격투신이 영화의 주를 이룬다. 한여름 찜통더위에 좁은 열차 세트 안에서 10~20명의 사람이 뒤엉켜 액션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특히 감염자를 연기한 배우들의 몸짓이 불규칙한 경우가 많아 합을 맞추기 어려웠다.
야구 배트를 들고 좀비에 맞서 싸운 최우식은 “제가 액션 경험이 많지 않아서 공유·마동석 선배님을 뒤에서 보고 따라하면서 배웠다. 그런데 방망이를 휘두를 때 길이 조절을 못해 연기자들을 실제로 때리기도 했다. 너무 죄송했다”고 머쓱해했다.
오랜만에 영화를 찍은 원더걸스 출신 안소희는 “아직도 제가 나오는 장면이 나오면 신기하고 놀랍다”고 입을 뗐다. 이번 작품에서의 본인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제 연기에 만족할 순 없지만 완성본을 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감정적이게 됐고 보람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기심의 끝판왕’으로 등장하는 김의성은 “그동안 했던 악역들을 다 모은 것보다도 훨씬 비호감인 사람”이라면서 “영화가 적당히 잘되면 괜찮겠지만 아주 잘되면 (제가) 많이 곤란해질 것 같다”고 농담했다. 그가 바라는 건 한 가지. ‘누구나 절대악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여름 성수기에 개봉하는 시원한 블록버스터인만큼 흥행도 기대해볼 만하다. 연 감독은 “흥행은 예상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제게 부산행은, 관객 2만명씩 든 전작들과 다르지 않다. 상업적인 영역 안에서 만족스럽게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연출자로서 만족한다”고 했다.
오는 20일 개봉 이후 관객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해진다.
[관련기사 보기]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