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세계축구는 거대한 지각변동을 경험했다. 포르투갈은 처음으로 유럽을 정복했다. 칠레는 2년 연속으로 남미의 패권을 잡았다. 포르투갈과 칠레가 판을 흔들면서 생긴 틈으로 스페인 잉글랜드 브라질과 같은 기존의 강호들은 줄줄이 빨려 들어갔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나타난 세계축구의 새로운 질서다.
그리스는 유로 2004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PAOK) 게오르고스 카라구니스(풀럼)를 제외하면 변변한 스타플레이어도 없었지만 강력한 수비축구로 강호들을 무너뜨렸다. 개최국 포르투갈이 개막전에서 희생을 당했고, 프랑스 체코가 토너먼트 라운드에서 그리스를 만나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결승전에서 포르투갈은 0대 1로 져 다시 눈물을 삼켰다.
하지만 돌풍은 태풍처럼 커지지 않았다. 그리스는 2년 뒤 열린 2006 독일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탈락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 첫 판부터 한국에 0대 2로 졌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리스의 유로 2004 우승은 마치 투견장에서 우연하게 챔피언의 급소를 물고 승리한 언더독의 이변이나 다르지 않았다.
오랜 투자와 경험을 쌓지 않고 얻은 열매로 잠깐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기근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리스축구는 그렇게 유럽의 중하위권 수준으로 다시 몰락했다.
하지만 포르투갈 칠레는 조금 다르다.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우승을 준비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시스템과 인프라를 갖춘 스페인 독일 잉글랜드 이탈리아 프랑스 브라질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투자했고 정상에 도전했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레알 마드리드)나 알렉시스 산체스(칠레‧아스날)와 같은 세계 최정상급 스타플레이어들이 나왔다.
월드컵 유로 코파아메리카와 같은 메이저대회에서 꾸준히 토너먼트 라운드로 진출하며 우승을 향해 쉬지 않고 도전했다. 트로피만 없을 뿐 언제나 우승후보였다. 우승후보지만 우승할 수 없는 팀이라는 시선은 몸값이 높은 선수들의 목표의식과 협동심을 높였다.
강한 목표의식과 협동심은 조직력을 완성한 마지막 단추였다. 개인기록보다 승리에 집중했고, 압박수비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돋보여야 생존할 수 있는 소속팀에서의 사고방식을 깨고 감독이나 주장의 지시를 이행했다. 안 풀릴 땐 스타플레이어가 부상 위험을 무릎쓰고 직접 나서서 해결했다.
포르투갈이 유로 2016 조별리그에서 유일하게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상태에서 우승까지 한걸음에 달려가고, 칠레가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 곤살로 이과인(나폴리) 등 슈퍼스타들을 은하수처럼 거느린 아르헨티나를 2년 연속으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다.
포르투갈과 칠레의 다음 목표는 월드컵이다. 두 탐 모두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단 한 번도 정상을 밟지 못했다. 월드컵은 지금까지 브라질(5회) 독일 이탈리아(4회)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이상 2회) 스페인 프랑스 잉글랜드(이상 1회)에만 정상을 허락했다.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굳건하게 우승국의 위상을 지키고 있지만 브라질 스페인 잉글랜드 우루과이는 몰락했다. 프랑스도 상승세를 탔지만 결정력이 부족했다. 여기에 웨일스 폴란드 벨기에 미국 콜롬비아가 기존의 강호들을 견제하는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아이슬란드와 같은 다크호스도 나타났다.
세계축구의 이런 거대한 지각변동은 유로와 코파아메리카에서 우승경험과 자신감을 쌓은 포르투갈과 칠레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포르투갈과 칠레가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말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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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