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변가’ 클린턴, 알고 보니 ‘기자회견 공포증’ 환자?

입력 2016-07-12 00:06 수정 2016-07-12 00:06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직시절인 2011년 10월 18일 지중해 말타에서 C17 수송기를 타고 미리바 트리폴리로 가던 중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69) 전 국무장관은 달변가다. 토론회건 청문회건 언제나 거침없이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고 공격을 되받아친다. 그러나 이런 클린턴이 반년 넘게 피하는 자리가 있다. 언론과 1대 다수로 만나는 기자회견장이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지난해 12월 4일 이후 기자회견장에 나서지 않는 클린턴이 ‘기자회견 공포증’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고 10일(현지시간) 분석했다.

클린턴에게 이 문제가 제기된 건 처음이 아니다. 8년 전 대선 경선에서도 클린턴은 메일 영상 등으로만 입장을 내놓으며 자신의 진영에서 나가는 발언을 최대한 통제했다. 이메일 스캔들이 불거지는 과정에서도 클린턴은 기자회견을 좀체 열지 않아 의혹이 심화되는 걸 자초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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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선 출마선언 뒤에도 클린턴은  언론과의 1대1 인터뷰에 300회 가까이 응하는 걸로 기자회견을 대신했다. 지난 5월 31일 방영된 CNN방송과의 인터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서 클린턴은 관련 질문을 받고 “앞으로 다양한 형태로 질문에 답할 것”이라며 기자회견을 약속했으나 약 5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지키지 않고 있다.

유력 시사매체 뉴욕매거진은 같은 달 30일 기사에서 클린턴이 영부인 시절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는 기자들 때문에 ‘정치적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고 있을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그간 여성혐오적 편견 등으로 자신을 깎아내린 언론에 진저리를 내고 있어서다. 일정마다 쫓아다니는 어린 기자들을 싫어해 비행기도 따로 탈 정도다. 다른 정치인들에게선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정제된 질문과 정책 토론을 좋아하는 클린턴의 성격도 한몫한다. 언론이 몰리는 기자회견장에는 인상적인 답변을 얻어내려 거친 질문이 경쟁적으로 쏟아진다. 폴리티코는 통제되지 않은 상황을 싫어하는 클린턴의 성격상 아무 규칙 없이 공격적인 질문이 난무하는 기자회견 자리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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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잡기’를 싫어하는 성격 역시 원인이다. 뉴욕매거진은 클린턴이 타고난 연설가(speech maker)보다 일꾼(work)에 가깝다며 구체적 계획 대신 언론이 좋아할만한 상징을 내세우는 걸 꺼린다고 전했다. 1995년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라는 문장으로 유명한 유엔 여성회의 연설 등 수차례 인상적인 모습을 선보였지만 이는 페미니즘에 국한된 예일 뿐 클린턴의 본 모습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마크 펠드스타인 메릴랜드대 언론학 교수는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턴은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지만 언론과 주고받는 식의 설전을 즐기지 않는다”면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존 F 케네디, 남편 빌 클린턴과는 다른 모습이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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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맞수인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비교했을 때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클린턴은 언론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질문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답변하려 한다. 농담이나 공격적인 발언은 물론 기자 개인을 향한 인신공격까지 서슴치 않는 트럼프와 대조적이다.

기자회견 기피증은 악순환을 불러온다. 언론을 피하는 탓에 기자들이 더욱 클린턴을 신뢰하지 않고, 이 때문에 부정적인 기사가 실리면 클린턴이 언론을 더욱 싫어하게 되는 식이다. 폴리티코는 “현대 정치체제에서 클린턴이 지금의 태도를 고수할 경우 심리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면서 “좋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늑대 같은 언론과도 직접 대면할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