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의 저주 50년 총정리… 이쯤 되면 과학입니다

입력 2016-07-11 14:05 수정 2016-07-11 14:10
“형,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 펠레(왼쪽)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 사진=AP뉴시스

2014 브라질월드컵 본선 조 추첨식이 열린 2013년 12월 7일 브라질 코스타 도사우이페. 펠레(76·브라질)는 머뭇거렸다. 원하지 않은 질문을 받은 듯 표정은 어두웠다.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만연했던 웃음기는 사라졌다. 정적은 3초 가까이 흘렀다. 펠레는 한 차례 말을 더듬더니 질문을 건넨 진행자를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브라질이 결승전에 진출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브라질의 축구영웅 펠레는 조국의 결승 진출을 말했다. 반응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징크스 가운데 하나인 ‘펠레의 저주(The Curse of Pele)’를 의식한 반응이 지구촌 곳곳에서 쏟아졌다.

 각국 인터넷매체는 펠레의 발언을 앞세워 브라질의 결승 진출 실패를 예상하는 흥밋거리 수준의 기사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SNS에서는 브라질 네티즌의 탄식과 나머지 본선 진출 31개국 네티즌의 환호가 엇갈렸다. 일부 브라질 네티즌은 우승후보를 질문한 진행자와 대답한 펠레에게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다.

 월드컵 때마다 우승후보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진땀을 빼는 펠레는 2분여의 짧은 출연시간이 끝나자 서둘러 무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반년쯤 지나 월드컵 4강전이 열린 2014년 7월 9일 벨루오리존치 에스타디오 미네이랑에서 브라질은 거짓말처럼 독일에 1대 7로 참패를 당하고 탈락했다.

 펠레는 세계 축구계에서 유일하게 ‘황제’ 칭호를 얻은 슈퍼스타다. 하지만 월드컵 우승 판세를 내다보는 통찰력은 이런 명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반세기 가까이 거의 모든 대회에서 우승국을 맞히지 못했다.

 펠레의 저주는 1966 잉글랜드월드컵에서 시작됐다. 펠레는 현역 선수로 출전한 이 대회에서 조국의 우승을 자신했다. 그러나 브라질은 사상 최악의 성적(1승2패)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1978 아르헨티나월드컵에선 독일과 페루를 우승 후보로 거론했지만 두 팀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 잉글랜드, 프랑스가 1990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 우루과이가 펠레로부터 우승 후보라는 찬사를 듣고 결승 무대를 밟지 못했다.

 1994 미국월드컵에서는 펠레가 우승 후보로 가리킨 콜롬비아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자책골을 넣은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펠레가 콜롬비아와 함께 거론한 독일은 8강에서 탈락했고, 우승 가능성이 없다고 전망한 브라질은 월드컵을 들어올렸다.

 펠레의 저주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부터 단순히 우승국 전망으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펠레는 아프리카의 선전을 예상했지만 나이지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4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펠레가 우승 후보로 꼽은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스페인은 조별리그에서 무릎을 꿇었다.

 한국도 펠레의 저주를 경험했다. 펠레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4강까지 오른 한국을 향해 “결승전까지 오를 만하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했던 한국은 준결승전에서 독일에 가로막혔다.


 펠레가 이 대회에서 우승 후보로 지목한 프랑스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조별리그 통과조차 어렵다고 전망한 브라질이 우승했다. 펠레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도 한국의 16강 진출을 전망했으나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선전할 것이라고 기대한 선수가 부상을 당한 사례까지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와 잉글랜드의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랬다. 징크스는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풀렸다. 우승 후보로 지목을 받은 스페인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정상을 밟으면서 펠레의 저주를 풀었다.

 하지만 11일 프랑스 생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결승전에서 펠레로부터 우승 후보로 지목을 받은 프랑스가 포르투갈에 0대 1로 패배하고 사상 첫 우승을 허용하면서 저주는 다시 시작됐다. 다음 메이저대회는 2016 리우올림픽과 2018 러시아월드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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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