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코스프레? 정치적 선동? 도 넘은 ‘리쌍 세입자 때리기’

입력 2016-07-10 17:13 수정 2016-07-10 17:47

지난 7일 힙합듀오 리쌍 건물 내 곱창가게 ‘우장창창’의 강제 철거 집행 이후 세입자 서윤수(34)씨와 맘편히장사하고싶은 상인들의모임(맘상모)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8일 맘상모는 ‘강제 집행 이후, 우리가 정작 걱정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긴급논평을 냈다. 그러나 이들의 해명에 여론은 더욱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을 코스프레 하지 말고 법대로 하라”며 서씨가  “정치적 선동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체장애인들이 응원 피켓을 들고 찍은 인증샷을 보고 “장애인까지 동원하는 막장”이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유독 서씨의 ‘우장창창’ 사태에는 ‘건물주 갑질’이 아닌 ‘을의 횡포’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갑질’은 최근 몇년 간 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가 돼 왔다. 그런데 ‘우장창창’ 사태에는 온도차를 보인다. 

왜 그럴까? 서씨가 “을 코스프레를 한다”는 비판의 근거는 바로 ‘법’이다. 즉 서씨가 법을 어기면서 억지를 부리고 약자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 법대로라면 리쌍의 강제철거집행은 합법적 행위다.

리쌍은 악덕 건물주들에 비하면 세입자의 요구를 많이 들어준 편이었다. 바로 내쫓을 수도 있었는데 6개월의 말미를 줘 2년의 계약기간을 채울 수 있게 했다. 3년 전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명시하지도 않았던 권리금의 일부인 1억8000만원을 챙겨줬다. 지하 1층에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재계약도 해줬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리쌍은 관대한 건물주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법’이 허점 투성이였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바로 내쫓을 수도 있는데 안 그랬으니 고마워해야 한다”는 인식은 위험하다. 임대인이 임차인의 생존권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에 의하면 권리금을 줄 필요가 없는데 리쌍은 1억8000만원이나 챙겨줬다”는 여론도 마찬가지다. 처음 서씨는 3억여원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다. 권리금을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2013년과 지난 5월 상가임대차보호법은 두 차례 개정이 됐다. 권리금이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다. 임대인에 대한 임차인의 대항력을 높일 수 있는 조항도 곳곳에 생겨났다. 개정을 이끌어낸데엔 서씨와 맘상모의 덕이 컸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상가임대차보호법에는 구멍이 많다. 권리금을 구제받을 수 없는 예외조항이 있고 환산보증금을 기준으로 상가법 보호를 받지 못하는 세입자들도 많다.

또 서씨가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계약갱신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씨는 이에 “몰랐다”고 항변했다. 사람들은 서씨의 안이한 대응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영주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환산보증금이 4억원을 넘을 경우 상가보호법이 적용이 안되며 갱신요구를 해야 한다는 걸 아는 세입자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건물주 측이 한 달 이상 가만히 있다가 더 이상 계약갱신의사가 없다며 퇴거명령을 내린 것은 법의 허점을 이용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맘상모의 '릴레이 선전전' 포스터

서씨가 ‘정치적’이라는 의혹도 있다. 서씨가 대표로 있는 맘상모는 2012년부터 임차인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싸워왔다.국회 앞 1인 시위, 정기 집회 등 4년 동안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 성과가 두 차례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이다. ‘정치적’이라면 정치적인 셈이다. 서씨는 그간 자신을 비롯한 임차인들의 권리 개선을 위한 정치적 행위를 해왔다. 이를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노들장애인야학' 페이스북 캡처

장애인들을 동원해 ‘막장짓’을 했다는 비난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사진의 원 출처는 ‘노들 장애인야학’ 페이스북 페이지다. 이들은 맘상모의 싸움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의사를 전했다.

은하수 다방과 리치몬드 제과점, 이리카페 등은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홍대를 떠났다. 홍대뿐만이 아니다. 젊은 창업주들이 개성있는 상점들로 상권을 살려놓으면 건물주들이 꿰차 내쫓는'젠트리피케이션'도 법대로 한 결과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지난 6월 9일 세입자가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기한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다.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은 9~15년씩 장기 임대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무소속 홍의락 의원은 10일 환산보증금 기준을 손질해 상가법 보호를 받는 세입자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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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