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발생한 ‘강남역 공중화장실 살인’ 사건의 결정적 범행 계기는 ‘길 가던 여성이 던진 담배꽁초’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살해범 김모(34)씨가 젊은 여성이 던진 담배꽁초가 자신의 신발에 맞아 여성들에게 쌓였던 스트레스와 불만이 폭발해 여성 살해를 결심했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에 따른 묻지마 범죄’라고 결론 냈다. 피해망상으로 여성 일반에 대한 반감이나 공격성은 보이지만 ‘여성 혐오 범죄’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김후균)는 김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10일 밝혔다. 검찰은 김씨에 대해 치료감호와 전자발찌 부착명령도 함께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범행 이틀 전인 지난 5월 15일 불특정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의 뜻을 굳혔다. 자신이 일하던 음식점 주변 공터에서 담배를 피우던 중 길을 가던 여성이 던진 담배꽁초가 날아들자 ‘이 사람이 나한테 피해를 준다’며 분개했다고 한다. 그는 분노 해소 수단으로 자신이 직전에 일했던 강남역 인근 술집 건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여성 살해를 결심했다.
김씨는 5월 26일 오후 5시40분 음식점에서 조퇴하면서 주방에 있던 흉기를 챙겼다. 그는 지하철을 타고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건물 남자화장실에 들어가 2시간 정도를 머물렀다가 오후 11시44분 문제의 건물로 돌아왔다. 이후 약 50분 동안 건물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 있는 화장실 입구에서 담패를 피우며 기회를 엿봤다. 화장실을 드나드는 남성 6~7명은 그냥 보냈다. 다음날 오전 1시7분쯤 김씨는 남자 용변칸에 앉아 대기하다가 피해자 A씨(22)가 들어오자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했다. A씨는 이틀 전 담배꽁초를 던졌다는 여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검찰은 당시 김씨가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였던 것으로 봤다.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약 한달 간 김씨의 정신 감정을 진행할 결과도 피해망상과 환청 등 증세의 조현병 진단이 나왔다.
김씨는 중·고교 시절부터 정신적 불안증세가 시작됐으며 병무 신체검사에서 신경증적 장애 4급 판정이 나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2009년 조현병(정신분열) 진단을 받고는 6차례 이상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길에서 여자들이 앞을 가로막아 지각을 했다’ ‘여자들이 나를 견제하고 괴롭힌다’는 망상이 심해지면서 여성에 대한 반감과 불만도 커졌다고 한다.
그는 지난 1월 정신병원 퇴원 후 약물복용을 중단했으며, 3월부터는 집을 나와 화장실, 빌딘 계단 등에서 숙식했다. 검찰 관계자는 “치료와 가족의 보호로부터 이탈돼 방치된 것이 정신질환 악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그러나 김씨의 범행을 여성 혐오 범죄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 여성 비하 또는 차별 등 편견 동기나 일반적 신념에 따른 혐오 경향을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여성들에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망상 증세가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 본인도 여성 혐오나 증오 감정은 없다고 수차례 진술했으며, 여성을 혐오한다는 자료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씨가 어머니 소개로 만난 여성과 사귄 적이 있고, 그의 휴대전화에서 여성 관련 성인물이 발견되기도 한 점, 그에 대한 주변인들의 진술 등도 근거로 들었다.
김씨는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도 반성과 죄의식이 결여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피해자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미안하다’고 표시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검찰은 지난 5월 26일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은 이후 김후균 부장검사를 주임검사로 한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수사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강남역 피해자 추모현장이 마련된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을 직접 방문한 뒤 철저한 수사와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검찰은 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함께 유족에게 긴급 피해자 지원금 6641만원을 지급했다.
[관련기사 보기]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검, "강남역 살인은 길가던 여성이 던진 담배꽁초가 직접 계기"
입력 2016-07-10 10:40 수정 2016-07-10 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