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 연극이야기] 40. 핏줄의 역사, 죽음과 생명의 윤회 오태석 ‘태(胎)’

입력 2016-07-07 09:05
핏줄의 역사, 죽음과 생명의 순환



올해 첫 개막한 ‘원로연극제’(6월3일~26일·아르코예술극장)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제작, 기획으로 이루어지면서 연극계 원로들을 위한 소중한 네 편의 작품을 선정해(김정옥 연출, 그 여자 억척어멈, 오태석 태(胎), 하유상 딸들의 여인, 천승세 신궁) 선보였다.

특히 오태석의 <태(胎)>는 1974년도에 안민수 연출, 오태석 작으로 드라마센터에서 초연된 이래로 질긴 탯줄의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다. 이후로 자신 작품을 직접 연출하면서 한국연극의 거장(巨匠)이 된 오태석은 자신이 잉태하고 손수 받아낸 <태>를 연출하면서 40여 년 동안 늘 다른 작품으로 해석해 <태>를 동시대로 투영시키고 있다는 것은 거장의 날카로움이다. 연출가 오태석의 실험성은 조명이 꺼지는 마지막까지도 뒤집기를 하면서 오히려 핏물의 역사로 잉태 된 탯줄은 더 단단해져 질긴 역사를 품고 진화하고 있다.



배우들의 난장은 날이 선채로 춤을 추고, 말은 구수하면서도 바늘이 된다. 날 것의 놀이와 연극의 의외성은 축약과 비약으로 응집된다. <태>는 무대에 다양한 시대적 해석으로 핏줄의 역사를 장전하고 죽음과 생명이 교차되는 윤회(輪廻)의 역사다. 죽음은 생명으로 순환되며, 권력의 욕망으로 갈라진 너덜거리는 육신의 몸으로 귀천의 객이 된 역사의 망자들은 탯줄로 그 숨이 이어져 이음새를 이어가는 핏줄의 역사는 죽은 역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다. 오태석은 핏물로 얼룩진 권력 투쟁의 죽음의 한복판에서 잉태한 탯줄을 가슴으로 보듬고, 40년 동안 극단 목화 품에서 성장시키면서 죽음과 맞바꾼 처절한 핏물의 역사를 불멸의 생명줄로 실험적으로 잉태시켜 왔다.



(태胎)는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고 핏물로 권력을 휘두르면서 조선의 7대 임금이 된 세조는 단종복위 운동을 한 충신 사육신(박팽년, 김문기, 성상문, 유응부, 하위지, 유성원) 삼족의 씨를 말리며 왕위찬탈을 피로 물들이게 한 권력의 욕망과 박팽년 가문의 탯줄의 이야기다. 박팽년의 며느리(손부)는 시할아버지 박중림을 세조 앞에서 죽이면서까지 종의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고 순천박씨 박팽년의 가문을 이으려는 태의 숭고한 모성애를 담는다. 잔인하고 섬뜩 거리는 핏물의 역사로 권력에 오른 세조를 바라보는 역사의 재해석은 현재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사육신들의 너덜거리는 살육전의 현장에도 박팽년의 자손은 운명적으로 하인(종) 아이로 인해 생명이 뒤바뀌면서 핏물의 역사로 잉태된 질긴 생명을 이어간다.



수양대군의 권력암투와 정치적 욕망, 영월로 유배된 단종의 죽음과 희생, 단종의 충신들인 사육신과 일가족 몰살은 권력의 욕망에서 자라나는 살육의 난폭함과 처절한 죽음 그리고 그 틈의 역사에서 태어나는 질긴 탯줄의 역사다. 오태석 연출은 수양대군과 실록의 역사적 사실성과 연극적인 시선을 투영해 죽음의 역사를 소환한다. 오태석의 제의적 놀이는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허물고 저승과 이승은 무당의 굿판으로 한 세상 통로를 만들어 혼과 육신으로 교란 시키며 역사의 진실을 추격한다. 극단 목화 배우들에 의해 오태석의 난장과 유희는 생명력으로 응집되어 무대에서 화기(火氣)를 내뿜고, 한국적인 연극으로 축약된다. 박팽년의 핏줄 태는 역사다. 그러나 탯줄로 이어지는 질긴 생명줄은 어미 젖가슴이 적셔 졌을 때 비로소 숨을 쉬며 인간으로 잉태된다. 어미의 젖 물과 젖줄이 탯줄로 이어져 온기로 적셔 졌을 때 비로소 생명줄이 된다.



사육신들의 너덜한 살육의 죽음 속에서도 박팽년의 자손은 운명적으로 종의 아이로 인해 죽음과 생명이 뒤바뀌면서 핏물의 역사로 잉태된 질긴 생명의 탯줄로 이어지는 역사다. 수양대군의 권력의 암투와 정치적 욕망, 영월로 유배된 단종의 죽음과 불확정성, ‘하늘에는 해가 둘이 없고, 땅에는 왕이 둘이 될 수 없어’라는 말을 하며 상왕 단종을 지키려는 충신 사육신과 삼족(三族)의 죽음, 세조의 권력욕망과 단종을 핏줄로 바라보는 인간으로서 내면성이 교차 되면서 그 틈의 역사에서 피어 올라오는 질긴 탯줄의 역사는 죽음과 생명의 윤회다. 살육전으로 권력에 오른 세조도 마지막 장면에서 박팽년의 아이를 일산(壹珊)이라고 이름을 지어지고 박팽년의 가문의 대를 잇게 하면서 560년 전 핏물의 역사를 보듬고 화해와 용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극단 목화 작품은 91년도부터 <백구야 껑충 날지 마라, 충동소극장>을 시작으로 1994년 오태석 연극제 등 대부분 극단 목화의 작품은 빠짐없이 다 봐왔다. 1997년 국립극단(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올려 진 오태석 연출의 <태>부터 원로연극제까지 극단 목화의 태는 다양한 버전의 연극형식으로 진화된 작품을 다섯 차례 이상을 관람했다. 오태석 작품의 묘미는 볼 때 마다 작품의 해석과 표현 양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초고된 작품의 텍스트는 진화하면서 단단하게 함축된다. 제의, 비약, 축약, 즉흥성, 연희, 의외성, 놀이 등의 오태석 연출의 연극적 표현은 강렬한 실험성으로 미세한 균열을 생산하지만 균열의 자국을 늘 새로움의 형식과 실험성으로 그 여백을 채워가려는 한국연극의 거장인 오태석 연출가의 장인정신(匠人精神)의 면모다. 극단 목화가 40년을 버텨온 태의 질긴 생명 줄 만큼이나 여전히 건재한 이유다.



이번 원로연극제에서 오른 2016년 <태>는 오랜만에 극단 목화 작품에 출연한 배우 손병호, 성지루는 여전히 오태석 언어를 녹슬지 않게 받쳐줬고, 정진각은 작품을 탄력적으로 몰고 가면서 극의 균형감을 유지했다. 오현경 선생은 노장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박중림 역으로 연기를 깊이 있게 생산하면서 역사의 균형감을 보여줬다. 현재 목화 극단을 이어가고 있는 정지영(손부), 윤민영(종의 처), 송영광(세조·왕방연), 김지혜(잔종)의 연기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극단 목화는 7월24일까지 초연 40주년으로 남산골 한옥마을(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오태석 작, 연출의 대표작인 <춘풍의 처>를 공연한다. 한국인이라면 꼭 봐야 할 연극이고 추천하는 작품이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