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민심이 더 흉흉해질까봐 단순 변사로 신고했어요. 경찰에서도 선처해 준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지요.”
지난 4일 오후 1시40분쯤 경북 예천군 풍양면의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80대 할머니가 정자에 쓰러져 숨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예천경찰서 형사들은 숨진 할머니의 목 주위에 멍을 발견한 뒤 살인사건으로 추정하고 현장에 있던 마을주민을 상대로 사건 경위를 묻기 시작했다.
경찰이 사건을 캐묻자 순진한 주민들은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사 결과, 할머니의 사인은 단순 변사가 아니라 정자 위 기둥에 스스로 목을 매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마을주민들과 할머니의 아들이 정자 위 기둥에 목을 매 숨진 할머니의 시신을 수습한 뒤 목맨 노끈을 숨기고 경찰에 신고를 했던 것이다.
마을주민들이 할머니의 자살을 단순 변사로 숨긴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마을에서는 지난해 3월, 할머니가 두 다리를 청 테이프에 묶인 채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수사결과 범인은 자녀 양육비 문제로 할머니와 갈등을 빚어온 이혼한 전 며느리로 밝혀졌다.
이후 마을주민들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일상생활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큰 불안감에 떨었다. 일부 주민은 아예 외출까지 자제했고 간간이 들리던 웃음소리마저 사라졌다.
이런 상황이 지속돼 오다 사건 발생 1년여 만에 이번엔 할머니가 신병 등을 비관해 마을 앞 정자 위 기둥에 목을 맸다.
현장을 목격한 마을 주민들은 “더 이상 동네의 비극을 이어가서는 안 된다”며 자살이 아닌 자연사로 신고했던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살인사건 이후 마을이 쑥대밭이 됐는데 할머니가 목을 매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 동네 민심이 더 흉흉해질까 두려워 단순 변사로 신고했다”며 “경찰 조사에 혼선을 줘 죄송하다”고 말했다.
예천경찰서는 평소 지병에 시달려 온 할머니가 신병을 비관해 스스로 목을 매 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사실대로 신고하지 않은 주민들에 대해서는 선처한다는 방침이다.
예천=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
할머니의 자살을 변사로 신고한 이유는?
입력 2016-07-06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