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은 '제국의 위안부' 논란

입력 2016-07-04 15:44 수정 2016-07-04 18:09
박유하(59) 세종대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이 책에 대한 본격 비판이라고 할 정영환(36) 메이지가쿠인대 교수의 책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가 최근 번역, 출간됐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저녁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열린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출간 기념 강연회 장면. 정영환 교수는 조선적 신분 문제로 입국이 불허돼 화상으로 강연회에 참석했다. 박유하 교수가 앞에 나와 정 교수와 토론하고 있다.

 2013년 8월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는 한일간의 최대 쟁점인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가장 논쟁적인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이 책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국과 일본에서 사뭇 다르다. 일본에서는 “역사의 진실을 응시한 발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여러 굵직한 저술 상을 수상했지만, 한국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고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이 책을 둘러싼 논란이 격렬했다. 그러나 감정적인 격돌이나 추상적인 비판 위주였을 뿐 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놓고 논박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정 교수의 책은 ‘제국의 위안부’에서 인용한 사료와 증언의 사실성을 전면적으로 검토한 첫 책이다. 또 박 교수의 주장이나 해석, 평가 등이 근거하고 있는 사상적 맥락을 추적하고, 일본에서 ‘박유하 현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의 책이 절찬 받는 배경을 분석한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는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주장들, 예컨대 위안부의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일본은 충분히 노력했고 보상도 했다, 위안부는 일본군과의 관계에서 협력자나 동지이기도 했다, 위안부 중에서 미성년자는 예외적이었다 등이 어디서 나온 것이고, 그것이 사료와 증언을 제대로 인용, 해석한 것인지 치밀하게 검토한다.
정 교수는 위안부가 일본군과 동지 의식을 가졌다는 주장의 근거로 인용된 문구에 대해서 “센다 가코의 저작 ‘종군위안부’를 인용했는데, 원서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그런 얘기를 한 대목이 없다”면서 “동족이나 애국을 운운한 것은 위안부의 말이 아니라 일본군의 말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제국의 위안부’에 “‘운명’이라는 말로 용서하는 듯한 그녀의 말”이라고 서술된 황순이 할머니(1922∼2007)의 증언 역시 실제 증언집에 나오는 문구와는 다르다며 “할머니의 증언을 과잉해석했다”고 비판했다.
 위안부의 평균 나이가 25세이며 위안부 중에서 미성년자는 예외적이었다는 박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미국의 전시정보국 심리작전반이 작성한 ‘일본인 포로 심문 보고’를 인용하면서 포로가 되었을 때의 연령과 징집을 당했을 때의 연령을 혼동한 데서 나온 오류라며 위안부 대다수는 미성년자였다고 주장한다. 이밖에도 한일협정, 국민기금, 고노·무라야마 담화 등에 대한 박 교수의 우호적인 평가에 대해서도 논박한다.
 정 교수는 박 교수가 들려주고자 했다는 위안부의 다른 목소리란 일본군들이 말하는 위안부 이야기이고 일본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위안부 이야기라면서 “사료와 증언의 왜곡 등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본 지식인들이 이례적일 정도로 책을 절찬한 배경에는 일본 지식계의 우경화, 그리고 일본 리버럴도 이해할 수 있는 위안부 이미지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지난 1일 열린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출간 기념 강연회에 참석해 몇 마디 반론을 폈다. 먼저 일본에서 본인의 책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일본의 전쟁 책임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에 관해 한국과 연대해온 양심적 학자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전후 역사와 리버럴 세력을 정 교수의 말처럼 ‘퇴락’이라고 평가하고 배제한다면 앞으로 누구하고 연대하고 어떤 동아시를 만들겠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또 일본 국민들 사이에 20년 전에 비해 사죄의식이 더 약화됐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위안부) 운동의 결과가 그렇다고 할 때 자성은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의 실증적 비판은 그간 ‘해석의 문제’나 ‘생각의 문제’로 전개돼온 ‘제국의 위안부’ 논쟁을 ‘사실의 문제’로 진입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박 교수의 책이 일정한 지지를 획득한 것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몰이해와 지적 퇴락 정도로 해석하고 말 것인지는 의문이다. 위안부 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는 점, 꽉 막힌 위안부 문제를 풀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 등이 환영의 이유가 되진 않았을까.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나 화해에 대한 모색이 없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