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의 후예’ 아이슬란드의 골문을 지킨 하네스 할도르손(32·보되-글림트)는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유로 2016 기간에도 시간을 쪼개 호텔에서 영상 편집에 매달렸다. 이번 대회는 마치 아이슬란드 ‘흙수저’ 선수들이 열연한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아이슬란드는 4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대회 8강전에서 2대 5로 패했다. 16강전에서 ‘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2대 1로 제압하며 파란을 일으킨 아이슬란드는 프랑스의 벽을 넘진 못했다. 할도르손은 전반에만 4골을 허용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인구의 약 10%나 되는 원정 응원단은 실망하지 않고 격려의 뜨거운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영국 언론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할도르손은 12세 때 친구들과 ‘Swimming Man(수영하는 남자)’라는 단편 코미디 영화를 제작했다. 그는 축구 선수생활을 하면서 상업영화를 만들고 있다. 2012년 아제르바이잔 유로비전 2012에 출전한 그레타 살로메와 존시가 부른 ‘Never Forget'의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했다. 할도르손은 은퇴 후에 아이슬란드에서 영화감독직을 약속받았다고 한다. 할도르손은 대회 조별리그 3경기에서 선방하며 3실점밖에 하지 않았다. 잉글랜드와의 16강에서도 골문을 든든히 지키며 2대 1 승리를 이끌었다.
‘토르’라는 별명을 가진 비르키르 바르나손(28·바젤)은 로이 호지슨 잉글랜드 전 감독과의 인연으로 눈길을 끌었다. 호지슨 감독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바이킹 FK(노르웨이)를 이끌며 바르나손을 키워 17세에 프로로 데뷔시켰다. 호지슨 감독의 지도로 기량이 부쩍 는 그는 삼포도리아(이탈리아)를 거쳐 스위스 명문 바젤에 입단했다. 그는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어 16강전에서도 맹활약하며 옛 스승을 울렸다.
아이슬란드 공도 사령탑인 헤이미르 할그림손(49) 감독의 이력도 특이하다. 그는 아이슬란드 휴양지인 헤아마에이 섬에서 치과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 언론 ‘가디언’에 따르면 그는 인구 40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 베스트만나에이야르 제도에서 아마추어 선수생활을 했다. 그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1993년엔 여자 아마추어 축구팀 코치를 맡았다. 이후 여러 팀을 지도하다 유로 2016 조별예선 개막 전 스웨덴 출신 라르스 라예르베크(68)감독과 함께 대표팀을 지휘하게 됐다.
그는 예전부터 축구 인프라를 구축해야 좋은 선수들을 배출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주장해 왔다. 그의 말을 들은 아이슬란드 정부는 실내 경기장을 짓기 시작했고, 그 결과 재능 있는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현 대표팀 선수들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기 때문에 각 선수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라예르베크 감독은 전략과 기술에 매달리는 동안 그는 선수들 간의 조직력을 다지는 데 전념했다. ‘아이슬란드 동화’는 8강에서 막을 내렸지만 잔잔한 감동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한 편의 영화 같았던 아이슬란드의 기적
입력 2016-07-04 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