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이야기가 통할 줄이야. 누구도 예측하지 못 했다. 쟁쟁한 노년 배우 8명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게 화제가 되긴 했다. 하지만 그뿐.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흥행 요소가 별로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최고 시청률 8.4%(15회·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하며 tvN 드라마 역대 시청률 5위에 올랐다. 1~4위는 ‘응답하라 1988’ ‘시그널’ ‘응답하라 1994’ ‘또 오해영’ 순이다. 압도적인 연기력을 보여준 시니어 배우들(신구 김영옥 김혜자 나문희 주현 윤여정 박원숙 고두심)과 노희경 작가의 탄탄한 대본, 홍종찬 PD의 섬세한 연출이 만들어낸 결과다.
평범한 일상에서 튀어나오는 명대사, 명장면
이야기 전개는 극적이지 않다. 평범한 일상들이 이어진다. 조인성 고현정이라는 미남미녀 커플을 동원하고도 이들의 로맨스를 곁가지 취급이다. 자극적인 설정 하나 없이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들이지만 무언가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16회 마지막 장면에서 고현정(박완 역)의 내레이션은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꼰대들이라면 질색을 하던 박완의 말이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왜 나는 지금껏 끝없이 죽음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고 생각했을까. 그들은 다만 자신들이 지난날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것처럼 어차피 처음에 왔던 그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 길도 초라하지 않게 가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너무도 치열하고 당당하게 살아내고 있는데.”
배우들이 직접 꼽은 명대사, 명장면도 있다. 주현(이성재 역)과 황혼 로맨스를 보여줬던 김혜자(조희자 역)는 성재가 희자에게 건넨 말을 명대사로 꼽았다. “세월이란 게 웃기다. 젊었으면 뺨을 맞아도 너를 으스러지게 안았을 텐데. 지금은 졸려서 못 안겠다.” 김혜자는 “나이든 사람들의 사랑과 상황을 따스하게 잘 표현한 것 같다”고 평했다.
가장 평범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줬던 나문희(문정아 역)는 “제대로 말도 못하고 살아온 정아의 삶이 답답하고 서러웠다. 그게 참 가슴 아팠다”며 “그렇게 살아온 엄마들이 많을 것 같다”고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했다.
치매 증상을 보이는 희자가 가장 친한 친구 정아를 원망하며 쏟아낸 말도 명대사로 꼽힌다. “왜 맨날 넌 그렇게 사는 게 힘들어. 왜 맨날 힘들어서 내가 필요할 때 넌 없어. 난 너밖에 없었는데.”
화끈하고 대찬 성격의 오충남을 연기한 윤여정이 꼽은 명대사는 이렇다. “돈 많은 사람이 더 내는 게 평등이야.” 이 짧은 한 마디에 수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했다.
고현정, 조인성, 이광수… 젊은 배우들의 속 깊은 연기
시니어 배우들이 주인공이었지만 극 중 화자로 나온 고현정은 젊은 시청자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엄마가 부담스러운 딸, 꼰대가 지긋지긋한 30대, 박완은 수많은 아들, 딸, 젊은이들의 모습과 겹쳤다.
특별출연으로 비중은 적었지만 조인성(서연하 역)과 이광수(유민호 역)의 연기도 호평을 받았다. 조인성은 사고로 장애가 생기면서 박완과 헤어져야 했던 서연하를 절절하게 연기했다. 조인성이 등장한 장면들은 동영상 클립으로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리플레이 됐다.
이광수는 치매를 앓는 엄마를 애달프게 지켜보는 막내아들의 모습을 깊이 있게 표현해내면서 ‘연기자 이광수를 다시 발견했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tvN 관계자는 “젊은 배우들이 혹시라도 대선배들이나 드라마에 누를 끼칠까봐 더 열심히 하고 조심스럽게 연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사진=tvN 제공]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