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30)씨는 지난해 임신했다는 걸 알자마자 상사를 찾아갔다. 임신 초기에 하루 2시간씩 단축근무를 할 수 있는 제도를 이용하려는 생각에서였다. 얘기를 꺼내는 순간, 상사의 안색은 변했다. 그는 “꼭 써야 하는 것이냐” “모두가 다 쓰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면박을 줬다. A씨는 나중에 돌아올지도 모르는 불이익이 두려웠다. 하지만 입덧 때문에 견디기 힘든데다 몸이 약해 유산도 걱정됐다. 고민을 거듭하던 A씨는 신청서와 임신확인증을 제출하고 근무시간 단축을 허락받았다. 다만 찜찜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육아만 힘든 게 아니다. ‘워킹맘(일하는 엄마)의 비애’는 임신을 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각종 지원제도를 만들고 있지만 ‘그림의 떡’인 경우가 허다하다.
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2014년 9월 25일부터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를 도입했다. 30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임신 12주 이내, 36주 이후 근로자는 급여 삭감 없이 근로시간을 하루 2시간 단축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올해 3월 25일부터 전체 사업체로 확대됐다. 임신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A씨 사례처럼 쓰기도 전에 온갖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임신부들은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한 전례가 없어 먼저 썼다가 인사고과나 승진 등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대체인력이 없어 동료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최근 결혼한 이모(29·여)씨는 “제도에 대해선 알고 있지만 주변 동료 중에 쓴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임신하게 되더라도 그 전에 쓰는 사람이 있으면 모를까 당장 쓰진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용률은 저조하다. 고용부 의뢰를 받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0~11월 1000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명 이상이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를 사용한 적이 있는 사업체는 11.6%에 그쳤다.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사용률은 높았다. 300인 이상 사업체의 사용률은 37.0%로 가장 큰 반면 5~9인 사업체는 2.6%로 가장 작았다.
이마저도 표본조사일 뿐이다. 실제 산업현장에서 임신부가 근로시간 단축제를 얼마나 활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정확한 통계는 없다. 고용부 관계자는 “육아휴직 등은 고용보험기금에서 급여가 나가니까 통계를 뽑는데, 임신기간 단축근무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따로 통계를 잡고 있지 않다”고 했다.
더욱이 근로시간 단축 신청을 받아주지 않아 적발된 사업체는 아직 없다. 근로자가 직접 신고해야 하는 탓에 주저하는 것이다. 온라인 임신·육아 커뮤니티에는 “서럽지만 동료들과 푸념하고 말았다” “괜히 눈치를 보느니 정 힘들거나 병원에 가야할 때엔 연차를 써서 가고 있다” 등 하소연을 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김수경 여성국장은 “근로시간 단축제를 이용할 때 대체인력을 고용하지 않고 주변 동료들이 대신 채우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주 40시간 이상 근무가 일반화된 한국 사회에서 임신부 단축근무는 여성에 대한 지나친 ‘특혜’라는 시선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
“꼭 써야 돼?”…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 ‘그림의 떡’
입력 2016-07-04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