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리(푸른색) 징크스’ ‘카테나치오(빗장 수비) 콤플렉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4위로 세계 최강의 축구실력을 자랑하는 ‘전차군단’ 독일의 뒤에는 기분 나쁜 꼬리표들이 붙곤 했다. 수많은 팀 중에 하필 이탈리아만 만나면 한없이 작아졌던 탓이다. 그랬던 독일이 54년 동안 따라다니던 지긋지긋한 이탈리아 징크스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120분 동안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고, 9명의 승부차기 키커가 나선 끝에 얻어낸 승리였다.
독일이 3일 프랑스 보르도의 스타드 드 보르도에서 벌어진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이탈리아와의 8강전 토너먼트에서 양 팀 통틀어 18명의 키커가 나선 승부차기(6-5) 끝에 준결승 진출을 확정했다. 유로 사상 최다 키커 타이기록이다.
승부의 가장 큰 묘미는 ‘11m 러시안 룰렛’이라고 불리는 승부차기였다. 양팀 5명씩 공을 차 골을 많이 넣은 팀이 이기는 정규 페널티킥 룰로는 부족했다. 주축 키커들의 실축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메수트 외질(아스날)과 토마스 뮐러(바이에른 뮌헨),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이 이탈리아의 베테랑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유벤투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독일은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30·바이에른 뮌헨)가 선방쇼를 펼쳤다. 2014 브라질월드컵 ‘골든글러브’ 수상에 빛나는 노이어는 위기 때마다 이탈리아의 슈팅을 막고 골문을 굳건히 지켰다. 승부차기에서는 이탈리아의 9번째 키커로 나선 마테오 다르미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슈팅을 저지해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독일은 마지막 키커 요나스 헥토르(퀼른)가 골망을 흔들며 기나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맨오브더매치(MOM)’에 선정된 노이어는 “수많은 승부차기를 겪어봤지만 정말 드라마처럼 특별한 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로써 독일은 월드컵, 유로 등 메이저대회 토너먼트에서 이탈리아를 단 한 번도 꺾지 못한 '카데나치오(빗장수비) 공포증'에서 벗어났다. 징크스의 시작은 1962년 칠레 월드컵 조별리그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은 이탈리아와 0대 0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독일은 메이저 대회에서 8차례나 이탈리아와 마주했으나 4무 4패에 그쳤다. 지난 유로 2012 4강에서 독일의 발목을 잡은 것도 이탈리아였다. 독일은 조별리그 전승으로 본선 토너먼트에 올랐지만,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에 1대 2로 져 우승의 꿈을 접었다.
4년 만에 이탈리아와 만난 독일은 스리백과 포백을 오가는 수비 전술로 맞섰다. 독일 요하임 뢰브(56) 감독은 빗장 수비를 뚫기보다는 이탈리아의 선제골 막기에 주력했다. 그의 계산대로 전반전까지 0-0으로 비긴 뒤 후반 20분 외질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다. 후반 33분 페널티킥으로 동점골을 내줬지만 결국 승부차기 끝에 오랜 징크스를 깼다.
이로써 독일은 1972년 1980년 1996년에 이어 통산 4번째 우승을 노릴 수 있게 됐다. 이 대회에서 통산 3회 우승을 거머쥔 건 독일과 스페인뿐이다. 이번에 독일이 우승하면 대회 최다 우승국의 영예를 누린다. 독일은 프랑스-아이슬란드 8강 경기 승자와 오는 8일(한국시간) 결승 티켓을 두고 맞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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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