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51·구속기소)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의 항소심을 맡은 부장판사에게 접근했던 법조브로커 이민희(56·구속기소)씨는 스스로를 사건 관계인으로 칭한 지인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사건 배당 정보를 빼낸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들의 재판부 전자(電子) 배당이 이미 마쳐진 상태에서 외부의 민원전화가 걸려왔고, 이를 응대한 법원 직원은 배당 정보에 접근해 그대로 알렸다.
이와 같은 사실은 대법원 업무보고를 위해 30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을 언급하며 “담당 재판장도 알지 못하는 배당 사실을 이민희라는 브로커가 먼저 알고 알려주는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씨는 정 전 대표의 항소심 첫 재판장이었던 L부장판사와 지난해 12월 29일 만나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자신에게 사건이 배당된 줄 몰랐던 L부장판사는 다음날 바로 회피 신청을 했다.
박 의원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고영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의아하게 생각해서 조사를 해 보니까 시스템상 ‘그럴 수도 있겠다’(싶었다)”고 답변했다. 고 처장은 “배당이 전자적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정작 재판장은 모르는 상태로 지나갈 수 있다. 그런 것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 처장은 “실체는 이렇다”며 부연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이미 전자적으로 해서 올려져 있는데, 외부에서 우리 직원에게 ‘무슨무슨 사건에 관련된 사람인데…’ 하며 민원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이어 “접속권을 가진 우리 직원이 (컴퓨터 자판을) 때려보고, 접속을 해서 그대로 알려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 처장은 “알아본 사람이 이민희한테 알려줘서 그렇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해프닝인지, 가장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폐단이 있다면 유심히 봐 달라”며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이에 고 처장은 “법원에 부패전담부가 상당히 많은 줄로 알고 있다”며 “의도적인 배당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도 “오후가 되면 이미 결정된 사건들이 컴퓨터로 올라온다”며 “우리는 엔터 하나만 치고, (사건 배당에)자의적인 요소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고 처장은 이날 법사위원들로부터 ‘정운호 법조비리’로 촉발된 전관예우 관행에 대한 인식을 질문 받고는 “개인적으로 전관예우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국민이 믿어주지 않으니까 답답한 일”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법원이나 검찰 고위직을 지냈던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을 때 봐주거나 관대하게 대해주는 전관예우가 없느냐”고 물은 데 대한 답변이었다. 전관예우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막연한 의심에 불과하다는 식의 답변으로 해석돼 고 처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많은 질타를 받아야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정운호 배당정보, 우리 직원이 접속해서 알려줬다”
입력 2016-06-30 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