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이름만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배우였다. 지상파와 케이블을 넘나들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왔지만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묵묵히 제 몫을 해내며 서현진은 계속해서 성장해 왔고, 드디어 잠재력이 터졌다.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완벽하게 오해영을 연기해내면서 대중에 ‘서현진’을 각인 시켰다.
서현진은 29일 서울 강남구 빌라드베일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직업란에 ‘배우’라고 적게 된 지 얼마 안 됐다”며 “‘또 오해영’을 하면서 제가 이런 대본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걸 실감했고, 이런 배역을 할 수 있는 나이여서 좋았다”고 말했다.
꽤 다작(多作)을 했는데도 서현진이 식상하지 않은 느낌을 주는 것은 튀는 배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서현진은 걸그룹 ‘밀크’ 출신이지만 밀크를 기억하는 대중은 많지 않다. 어느 새 데뷔한 지 15년이 됐지만 스스로를 ‘배우’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배우는 되게 불안정한 직업이잖아요. 연기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해서 직업란에 ‘배우’를 못 적었던 건 아니에요. 언젠가 캐스팅이 되지 않으면 미련 없이 떠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쉬움 없는 사람처럼.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요. 그렇게 한 발 빼고 있었어요.”
연기자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된 것은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를 마치고 뮤지컬 ‘신데렐라’를 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서현진에게 선배들은 “쉼 없이 작품을 하면 고갈된다. 쉬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쉬는 대신 무대에 서는 것을 택했다.
“드라마 현장에서는 배우라는 자각 없이 일을 했어요. 몰입할 수 있고, 스태프와 함께 어우러지는 게 좋았어요. 그래서 굳이 ‘나는 배우다’라는 걸 생각하지 않았어요. 무대에 서보니 다르더라고요. 제가 다 해야 하는 거예요.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게 많다보니 ‘내가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자각이 생기더라고요.”
‘또 오해영’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서현진은 덤덤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제 입지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아요. (웃음) 달라지면 좋겠죠. 안 달라져도 좋아요. 그동안 시청률이 안 좋았던 작품들도 저는 좋았어요. 지금 분에 넘치는 사랑 받고 있다는 거 알아요. 그리고 이게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계속 흘러가겠죠. 저도, 여러분도요.”
서현진에게 롤 모델을 물었다. 처음 영화를 찍고 ‘한국의 모든 여배우들을 존경한다’고 생각했다는 서현진은 메릴 스트립을 이야기했다. “작년에 뒤늦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고 사람이 예뻐 보이는 게 눈, 코, 입 이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중년의 날씬하지도 않은 여자도 예뻐 보이는 건 표정이더라고요. 그걸 보고 저도 용기를 내 성실하게 연기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솔직하게 잘 해내면 날 보고도 사람들이 설레어 할 수 있겠다고요.”
오해영이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난 것은 어떨까. 서현진은 ‘부담’ 대신 ‘감사’를 택했다. “기억해주시는 캐릭터가 있는 건 감사한 일이에요. 평생 못 만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그 작품이 제 마음에 드는 작품이어서 다행이에요. 부담을 말씀하시는데…그걸 극복하는 건 제 문제고요. 제가 애착하는 드라마를 잘 기억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진=점프엔터테인먼트 제공]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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