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브렉시트 찬반 투표가 있던 날, 3년 넘게 살아온 대전 반석동을 떠나 세종시 첫마을로 이사했다. 3년 전 공사판이었던 세종시에서 갓 태어난 인영이를 키울 수 없다는 생각에 세종시에서 가장 가까운 대전 끝마을 격인 반석동에 터를 잡았었다. 이번에 계약기간도 종료됐고, 회사에서 주거 지원도 늘려준 참에 서울 병원 오가기도 편하고,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인영이를 키우자는 생각에 이사를 결심했다.
이사짐을 싸고 푸는 것은 막노동이었지만 우리 가족의 브렉시트는 저 먼 섬나라의 브렉시트와 달리 우리 구성원 모두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 아빠인 나는 우선 세종 청사 출퇴근 시간이 10분으로 줄었다. 앞으로 자전거를 사서 출퇴근을 할까 생각하고 있다. 아내는 결혼 10년 만에 바꾼 쇼파와 식탁에 만족하고 있다. 아내가 쇼파를 쳐다보는 눈빛은 야구를 멍하니 시청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윤영이는 전학 온 학교에 하루 만에 적응을 했는지 “빨리 월요일이 되서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다. 인영이는 생전 처음 한 이사에 아직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매일 잘 때가 되면 “엄마, 여기가 우리 집이야?”라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왜에?”라고 되묻는다. 그래도 넓은 집이 좋은지 콩콩 잘 뛰어다닌다.
30평대 아파트 전세 물건을 구하지 못해 난생 처음 40평대 신축 아파트에서 살아보니, 이제 겨우 3일이 지났지만 참 좋다...
이사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영이 장난감 방을 꾸며주는 것이었다. 아프고 난 뒤 장난감이 배 이상 늘어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인영이가 갖고 놀기 편하게 한 방에 꾸며놓고 보니 마치 천지창조를 한 신처럼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하고 싶었다. 두 아이가 새 쇼파에서 뒹굴고, 깨끗한 욕조에서 비누거품 목욕을 하고, 너른 거실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이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집에서의 2년이란 세월은 인영이의 치료와 맞물려있다. 2년 뒤 전세계약 기간이 끝나면 인영이도 예전처럼 건강해져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그 2년이란 세월을 참고 견디는 게 아니라, 웃으며 즐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느새 천연기념물이 되 버린 세베리아 세대(세종 초기멤버)의 마지막 황제가 아닌 마지막 기자가 될 것 같은 예감도 과히 나쁘지는 않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