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았다. 경기 내내 서서 손짓으로 선수들과 대화했다. 팀이 수비를 해야 할 땐 팔을 휘저으며 선수들을 끌어내렸고, 공격할 땐 두 팔을 번갈아 내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후반 30분엔 볼이 자기 쪽으로 굴러오자 뻥 차며 불만을 표출했다. 경기 막판 교체선수를 부를 땐 두 손으로 줄을 끌어당기는 팬터마임을 하기도 했다. 그의 손만 봐도 경기 상황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탈리아 미드맆더 엠마누엘레 자케리니는 “안토니오 콘테(47·사진) 감독이 모두 이야기해 줬다”고 말했다. 콘테 감독의 열정적인 지휘를 받은 이탈리아는 ‘무적함대’를 침몰시켰다.
이탈리아는 28일(한국시간) 프랑스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과의 유로 2016 16강전에서 조르지오 키엘리니, 그라치아노 펠레의 골을 앞세워 2대 0으로 이겼다. 유로 2012 결승전에서 스페인에 0대 4로 완패한 이탈리아는 설욕에 성공하며 8강에 진출했다. 이탈리아가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유로 등 메이저 대회에서 스페인을 꺾은 것은 1994 미국월드컵 이후 처음이다. 1968년 대회 이후 48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는 이탈리아는 7월 3일 독일과 준결승 진출을 다툰다.
이탈리아는 ‘방패’의 팀이다. 카테나치오(빗장 수비)는 악명이 높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이날 방패 대신 창을 들고 경기에 나섰다. 스페인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파악한 콘테 감독은 경기 전 이미 공격 축구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자 콘테 감독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이탈리아는 빠른 움직임으로 중원을 장악한 뒤 양쪽 풀백을 활용한 측면 공격으로 스페인을 공략했다. 반드시 골을 넣겠다기보다는 공격적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가 보였다. 콘테 감독은 스페인이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강한 전진에 고전한 것을 간파한 듯했다. 스페인은 이탈리아의 파상 공세에 당황해 장기인 패스플레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전반 32분 프리킥 세트피스 상황에서 선제골을 터뜨렸다. 에데르(인터 밀란)의 강한 슈팅이 골키퍼 손에 맞고 흐르자 골문으로 쇄도하던 지오르지오 키엘리니(유벤투스)가 가볍게 밀어 넣었다. 이탈리아는 후반 45분 펠레의 쐐기골로 승리를 자축했다.
다혈질인 콘테 감독은 지난 14일 치른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엠마누엘레 자케리니가 전반 32분 선제골을 터뜨리자 격하게 기뻐하며 펄쩍펄쩍 뛰다가 코피를 흘려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다음 시즌 첼시(잉글랜드) 지휘봉을 잡는다.
콘테 감독과 달리 비센테 델 보스케 스페인 감독은 벤치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봤다. 델 보스케 감독은 경기 후 “이탈리아가 우리보다 우월했음을 인정하지만 그들이 쉽게 이겼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한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좋은 선수를 많이 보유하고 있고, 클럽들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스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FC 바르셀로나)는 “할 말을 잃었다”며 “이탈리아는 우리보다 효율적이었다. 이제 다시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콘테 감독, 이탈리아의 8강행 지휘
입력 2016-06-28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