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영 칼럼]교회와 헌금

입력 2016-06-27 22:37

신문에 실린 어느 대형 교회 목사님의 글을 읽게 되었다. 새로운 교인이 입교를 하면 우선 십일조 헌금하는 것부터 철저히 가르쳐야 된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부터 포기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교회에 돈 쓸 곳도 너무나 많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 글이 내게 썩 와 닿지 않았다.

신앙을 시작하는 새 신자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이로 인해 신앙생활을 포기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초대 교회에서는 율법을 이방인들에게 강요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할례 문제는 심각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 교인들을 율법에서 해방시켜 주자고 주장했고, 베드로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피와 음행 등 몇 가지를 멀리 하라는 절충안을 내어 이방인 교인들의 짐을 덜어주자고 주장했으며, 안디옥 교회에 이를 통보해 주었다. 그리하여 이방 전도의 길을 좀 더 쉽게 열어주었다.

헌금 문제는 종교 개혁의 큰 원인이 되기도 했다. 루터는 천주교에서 시행하고 있던 면죄부 판매 문제를 큰 동기로 삼아 교회 개혁에 착수했고 이는 오늘날 개신교의 시작이 되었다. 당시 교회는 베드로 성당 건축 등 돈 쓸 곳이 너무 많아 이상한 교리를 만들기도 했다.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연옥에 있던 부모님이 천국으로 이동한다고 하니 너도 나도 면죄부를 샀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은 종교 개혁을 이루어 냈다.

세계사를 보면 교회는 부유하고 권력이 강할 때 가장 부패했고 쇠퇴했다. 하지만 박해가 심하고 어려울 때 교회는 강하고 힘 있는 영적 능력을 갖추어 왔다.

현재 한국은 세계적인 모범 성장 국가이지만 요즘 한국 교회의 도덕성은 돈 문제, 여자 문제, 세습 문제 등으로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 교인 수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많은 신학자들이 교인의 영적 성장 문제가 교회의 외적 성장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회 참여나 선교 문제 등에 앞서 영적으로 성숙한 교인을 만드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느 교회 집사 한 분이 50년 이상 나오던 교회를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동네 교회로 옮겼다고 해서 어느 장로님이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집사님은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립집사 대상에서 삭제되고 온 교인들 앞에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교회에 나올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젊었을 때에는 자신의 월급 전부를 교회에 헌금했던 적도 있었고 몇 십 년 동안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년퇴직 후 수입이 매우 적어져 교회에 올 때 드는 교통비마저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그 장로님은 우선 자신의 무능함에 슬펐고, 잘못된 일임에도 교회 방침을 바꿀 힘이 없다는 것에 또 한 번 슬펐다고 한다. 수십 년간 교회에 봉사하고 헌금했는데 노년에 수입이 없을 때 교회가 배려는커녕 좌절감을 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목사님의 인격과 설교가 자신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니 자신의 신앙 유지를 위해 교회를 떠나겠다는 하소연은 듣는 사람의 마음도 아프게 했다.

과연 십일조 문제가 그렇게 교회에서 중요한 것인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있는 사람만 인정받고 대우받는다면 초대 교회가 갖고 있던 잘못된 면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유럽이나 많은 나라들은 십일조는 없으나 종교세라고 하여 월급에서 약간의 세금을 낸다. 우리 교인들에게만 과도한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웬만한 교회 헌금 봉투 종류는 십일조 말고도 선교헌금, 맥추헌금, 천일기도헌금 등 10여개가 넘는다. 교회가 한 번쯤 가난한 교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있으면 어떨까 한다. 어려움에 빠진 교인, 생계가 어려워진 노년의 교인들에게 교회가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는 그런 제도 말이다. 이제 교회의 역할에는 가난한 나라 선교, 새 교인 전도, 사회 복지와 더불어 내 식구 내 교인 돌보는 제도 또한 필요한 때다.

한국유나이트문화재단 이사장, 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