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되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에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 열렸다. 지도가 그려지지 않은 길인 브렉시트가 가져올 경제적 파급효과의 수준에 대해서도 전망이 엇갈린다. 최근 수출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호(號)는 브렉시트가 연 어두운 항로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금융투자업계, 학계, 경제연구소 전문가들이 진단한 브렉시트의 배경 및 향후 전망과 과제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①브렉시트 결과, 예상과 달랐던 이유는?
글로벌 경제 전문가들은 24일 브렉시트 투표 직전까지 영국의 유럽연합(EU) 잔류를 점쳤다.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차이도 약 127만표로 컸다. 하나금융투자 김두언 선임연구원은 '영국 여왕의 브렉시트 지지 발언' 보도 및 저조했던 스코틀랜드 지역 투표율을 이유로 꼽았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난 21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 브렉시트 지지자라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여왕이 최근 식사자리에서 "왜 영국이 EU의 일부가 돼야 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셋 꼽아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영국 왕실은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여왕이 브렉시트를 지지한다는 해석이 분분했다.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쪽인 텔레그래프의 여론몰이가 효과를 거뒀다는 분석이다.
이번 투표에서 브렉시트 반대 입장인 스코틀랜드 지역의 투표율은 유독 낮았다. 영국 노동당은 "스코틀랜드 독립 목적을 이루기 위해 스코틀랜드독립당이 소극적으로 투표 캠페인을 했다"고 비난했다. 실제 독립당 대표 니콜라스터전은 투표 직후 스코틀랜드의 EU 잔류를 위해 독립 국민 투표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②금융시장 충격파 실물 경제까지 밀어 닥칠까?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의 충격은 불가피하다고 봤다. 수출 등 실물 부문에 얼마나 큰 충격이 가해질 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영국 경제가 브렉시트로 성장률이 0%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며 "유럽 역시 타격을 받을 수 있어 전 세계적으로 성장률이 둔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금융센터 최호상 해외정보실장은 "영국도 수입 수요가 높은 나라 중에 하나"라며 "영국 교역 국가들의 어려움이 과거에 비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물 경기 타격은 적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연세대 경제학부 성태윤 교수는 "영국이 EU와 무역공동체적 성격은 계속 유지하려고 할 것"이라며 "실물 부분 영향은 직접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영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며 "탈퇴한다고 해서 수출 수입이 안 되는 건 아니니까 실물경제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EU 회원국 연쇄 탈퇴 현실화 될까?
영국의 탈퇴 이후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 및 핀란드, 폴란드, 체코 등의 연쇄 탈퇴로 EU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 의견은 엇갈린다. 김두언 연구원은 "경기가 영국보다 더 어려운 남유럽 국가들은 여파가 있을 것"이라며 "내년에 총선이 있는 독일의 경우 다른 EU국가 포용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나올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최호상 실장은 "실제 연쇄 탈퇴가 일어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반 EU 정서가 확산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규철 연구위원은 "영국은 탈퇴에 정치적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며 "다른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EU탈퇴가 가져올 손해를 고려하면 탈퇴 러시가 크게 나타나진 않을 것"고 전망했다. 키움증권 서상영 책임연구원은 "연쇄 탈퇴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④블록경제가 와해되는 것은 아닐까?
영국의 EU 탈퇴가 보호무역주의를 가속화 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최호상 실장은 "브렉시트의 영향이 커지면 가능성이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이민, 고용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고,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도 무역장벽 등에 대한 얘기를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두언 연구원은 "유럽중앙은행(ECB)이 돈을 풀면서 중국, 미국까지 환율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고, 양극화와 분쟁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며 " 브렉시트가 글로벌 정책공조의 와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정근 교수는 "브렉시트가 세계경제가 개방주의에서 다시 보호무역 주의로 가는 흐름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악의 경우 블록경제의 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호상 실장은 다만 "미국 주도의 TPP 등이 활성화되면 블록경제 와해라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며 "아직까지 브렉시트는 EU만의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⑤한국 경제, 얼마나 큰 충격 올까?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에 단기 변동성이 커지는 것이 가장 큰 불안 요소로 꼽혔다. 김두언 연구원은 "환율의 변동성이 심해질 것이고, 중국과 일본이 함께 통화 완화 정책을 쓸 경우 한국의 수출도 안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곽수종 전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 수석연구원은 "한국 경제가 상당히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다. 영국 금융시장 혼란과 유로화 가치 하락이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관광 수지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적 변동성 확대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규철 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단기외채가 많지 않고 실물 부분이 갑자기 나빠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 금융시장 불안은 단기간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현대증권 배성영 연구원은 "국내 증시에는 미국과 중국 증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며 "24일 중국 증시가 유로존 혼란에도 불구하고 1%대 하락에 그친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⑥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는 불가피해 보인다. 성태윤 교수는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원화의 약세 진행을 용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규철 연구위원은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서는 "외환시장 급변동이 생기면 미세조정 정도는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보호무역주의의 가속화를 고려할 때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정근 교수는 "전세계적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수출에서 내수 중심으로 가기 위해 금융 의료 관광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양대학교 하준경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는 그 동안 수출 위주로 성장 전략을 꾸려왔다"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내수를 중시해야 한다는 말이 많이 나왔는데 국제 교역 의존의 위험성을 인식한 것이다. 앞으로 국내 소비자들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