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본은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안무했지만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댄스 뮤지컬’이야말로 그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영국 무용계가 그를 주목하게 만든 ‘호두까기 인형’(1992년)은 원작발레의 따뜻한 중산층 가정 대신 산업혁명 시기 고아원을 배경으로 소녀 클라라의 탈출 이야기로 바꿔놓았다. 또 남성 백조들로 유명한 ‘백조의 호수’(1995년)는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어디서도 사랑을 얻지 못한채 외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왕자 이야기로 그려냈다.
두 작품에서 보듯 그는 원작을 비틀되 현대인에게 친숙한 영화나 소설 등에서 모티브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호두까기 인형’은 찰스 디킨즈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고아원 장면을 연상시키고, ‘백조의 호수’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차이콥스키 3부작의 완성작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 역시 기존의 그의 스토리텔링 스타일을 충실히 보여준다. 이 작품이 원작과 가장 다른 것은 뱀파이어의 등장이다. 2000년대 중·후반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로 전세계를 강타한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부분들이 나온다.
그가 만든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오로라 공주는 마녀 카라보스 저주에 걸려 100년간 잠이 들기 전에 왕실 정원사 레오와 이미 사랑에 빠진 상태다. 레오는 공주를 지키기 위해 뱀파이어 요정 라일락 백작에게 목을 물려 영원한 삶을 얻는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뒤 라일락 백작과 함께 카라보스의 아들 카라독의 지배하에 있던 공주를 구해낸다. 그리고 레오와 공주는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와 벨라처럼 딸도 낳고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
사실 페로의 동화를 가지고 마리우스 프티파가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맞춰 안무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1890년)는 발레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지금도 전세계 주요 발레단에서는 프티파의 안무를 바탕으로 재안무한 버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명성과 중요성에 비해 현대 관객에게 그리 인기를 얻지 못하는 편이다.
이 발레의 원작이 지나치게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로 된 데다 춤도 엄격한 형식적 규칙과 테크닉을 보여주는데 중점이 놓여졌기 때문이다. 또 100년간 잠든 공주와 키스로 깨워 결혼하는 왕자의 사랑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전혀 이입이 안되는 상황에서 결혼식을 그린 3막은 춤을 감상하기 위한 ‘디베르티스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족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현대 안무가들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압축하는 방법으로 관객의 지루함을 덜어내곤 했다.
매튜 본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원작동화 및 프티파의 발레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을 뱀파이어 이야기로 해결한 셈이다. 극중에서 안무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에 머무는 편이다. 이를 위해 음악 역시 순서를 바꾸거나 효과음을 추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원작 발레에서 4명의 왕자가 구혼하는 ‘로즈 아다지오’는 순서가 레오와 공주의 2인무로 추어진다.
하지만 무용의 역사에 맞는 춤을 작품에 녹여놓은 시도 자체는 흥미롭다. 오로라 공주가 태어난 해를 1890년으로 정해 프티파 안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당시의 발레 테크닉을 보여주는가 하면 성인식이 있던 1911년에는 공주가 당시 맨발로 춤추던 현대무용 선구자 이사도라 던컨의 움직임을 구사한다. 여기에 100년 뒤 21세기에는 일렉트로닉한 효과음이 추가된 힙합, 레이브 댄스 등을 추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매튜 본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춤으로 만들어진 역대 ‘잠자는 숲속의 미녀’ 가운데 가장 역동적이고 재밌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