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유일 콜롬비아 군인들의 6.25참전비를 아시나요

입력 2016-06-23 10:12
1950년 6·25전쟁 때 남미 콜롬비아 군인들이 참전한 사실을 아시나요.

전란에 휩싸인 대한민국을 구하고자 유엔은 즉시 파병을 결정하죠. 6·25 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 미국만이 아니랍니다.

콜롬비아는 남미국가 중 유일하게 6·25전쟁에 지원군을 파견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거의 대척점에 있는 머나먼 곳에 있는 나라죠. 이 나라는 참전을 결정하자마자 미국식 장비로 재무장한 후 미 교관단으로부터 12주간의 교육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또한, 189명이 탑승한 해군 프리깃함도 한국 해역에 투입할 준비를 하기 위해 진주만에서 미 해군과 합동훈련에 나섰습니다.

1951년 4월 프리깃함 파딜라호가 한국을 향해 출항한 데 이어 1000여명의 병력으로 편성된 1보병 대대도 5월 21일 미국 수송선을 타고 콜롬비아를 떠났습니다. 이들은 1951년 6월 15일 이승만 대통령, 한미 고위 장성 그리고 한국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부산에 입항했습니다. 육군으로는 유엔군 중 마지막으로 한국에 도착한 것이죠.

콜롬비아는 총 4회에 걸쳐 교대 병력을 합쳐 연인원 5100여 병력을 한국에 파견했다.

이들은 6.25 전쟁 중 김화 400고지 전투, 연천 180고지 전투, 골모고지 전투 등에서 격전을 치렀습니다. 군율이 엄하고 용맹하기로 소문났으며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는 특유의 모토를 지켜 전투마다 혁혁한 전과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전 기간 중 전사 143명, 실종 69명, 포로 30명과 부상자 등의 고귀한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휴전이 된 1953년부터 1954년까지는 유엔군 방어작전지역 경계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전국에 6·25 참전국 기념비를 세우는 사업이 진행됐죠. 인천에는 콜롬비아군 참전비 건립이 결정됐습니다. 그해 9월 24일 서구 가정동에 비(碑) 높이 10m, 기단 높이 2m의 콜롬비아군 참전비가 세워졌죠. 매년 콜롬비아 독립기념일에 주한 콜롬비아 대사와 6·25참전유공자회 서구지회 회원들이 참석해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동상의 군인들은 인천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낯선 땅에서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생명을 바친 그들의 고귀한 뜻이 비문에 몇 자 적혀 있습니다.

‘카리브해 바다의 정기를 타고난 콜롬비아 용사들! 국제연합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가 마침내 611명의 고귀한 생명이 피를 흘렸다. 우리는 그들을 길이 기념하고자 여기에 비를 세운다.’ 이런 글입니다.

유엔은 6·25 전쟁 당시 16개국의 전투부대를 파견했습니다. 5개국은 의료지원을 했습니다. 모두 6대륙 21개국에서 전투부대 연인원 193만8330명이 한반도로 건너왔죠. 그들의 희생은 컸습니다. 전사·실종은 4만4786명, 부상은 10만4280명에 달했습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