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갓 태어난 인영이를 데리고 내려왔던 대전 끝마을을 떠나 세종 첫마을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이름 그대로 첫마을 아파트 단지 빼고 공사판이었던 세종시는 이제는 사람 살만한 도시로 변했다.
갓난아기였던 인영이가 조잘조잘 할 말 다하는 세월의 두께만큼 3년 동안 살림살이도 크게 늘었다. 지난 주말부터 내내 짐정리에 정신이 없다. 20년 전부터 간직해오던 연애편지 묶음을 이제는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아내의 엄포에 옛 추억 정리를 하다가 20년 전 ‘꿈’들을 발견했다.
스무살 초반, 군 입대 전 자랑스럽게(?) 탈고했던 단편소설이 게재된 학회 문집, 군 시절 해안경계라는 미명아래 바다를 벗 삼아 썼던 습작 뭉치들, 번번이 떨어지던 언론사 시험에 위축된 채 찍었던 졸업사진까지.
감히 말하자면 그때는 기형도처럼 살고 싶었다. 졸업사진 찍을 때 입을 양복을 친구에게 빌려 입고, 학관 식당에서 반찬 한두 개 더 짚을까 말까 고민하던 부족한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글을 쓰겠다는 꿈은 단단했다.
20년이 지나고 보니, 글쓰는 걸로 밥벌이를 하고 있긴 한데 내가 꿈꿨던 글은 아니다. 경제학개론 교양수업을 밤샘 공부하고 C학점 받았던 놈이 기자생활의 절반 이상을 경제기사를 쓰고 앉아있으니 말이다.
세 여인이 모두 잠든 이 밤, 맥주 한잔 들이켜며 옛 추억 들춰보니 아빠의 청춘이란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딸들아,
이제는 염색안하면 반백의 머리에
너희들이 남긴 음식 버리기 아까워 식탁에 홀로 앉아 꾸역꾸역 먹어대고,
“벙개 팡요(파워)” 너희들 손짓에 뒤로 벌러덩 자빠지는 발짓 연기를 하고,
매일 밤 엄마 옆에서 자겠다고 싸우는 너희 둘 모습을 부러운 듯 쳐다보며,
“아빠는 방귀쟁이”라고 놀림을 당하는 처지지만,
아빠도 한때는 아름다운 청춘이었단다.'
물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보다 지금 침대에서 너희 둘을 태우고 달리는 종마 인생이 더 좋지만, 그래도 나중에 아빠의 그 시절 나이만큼 되었을 때, 아빠의 청춘을 한번 쯤 생각해주길 바란다.
아빠는 그걸로 족하단다. 내 사랑하는 두 딸아.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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