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이 지난해부터 2년 연속 선보이는 ‘말괄량이 길들이기’(6월 23~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는 비극이 많은 발레에서 손꼽히는 희극발레 중 하나다. ‘드라마 발레의 완성자’ 존 크랑코가 196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여러 발레단에서 레퍼토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대해 여성 관객들 중에선 공연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이것은 발레 자체라기보다는 셰익스피어의 원작 희곡에서 기인한 것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파두아의 부자 밥티스타의 말괄량이 큰딸 카테리나와 얌전한 둘째딸 비앙카의 결혼 소동을 다룬 작품이다. 밥티스타가 많은 지참금을 앞세워 큰딸 카테리나를 페트루키오와 결혼시키는 것이나, 페트루키오가 순종하지 않는 아내 카테리나를 상당히 가학적으로 굴복시키는 이야기 등은 르네상스 시대에 실제로 존재했던 문화라고는 하지만 현대인에게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특히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대사들은 평등한 남녀관계를 추구하는 요즘 사회에는 최악이다. 일찍이 영국 작가 버나드 쇼(1856~1950)는 “제대로 된 감각을 가진 남자라면 여자와 함께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킬 수 없는 극”이라고 비판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학자나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도 당대는 물론 지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종종 연극으로 공연되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 TV 드라마, 발레, 뮤지컬 등으로 꾸준히 변주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가운데 최초로 유성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이 작품이었다. 영국의 저명한 평론가 아더 퀼러쿠치는 “서재에서 읽으면 신통치 않지만 무대에만 올려놓으면 굉장한 것이 바로 ‘말괄량이 길들이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 작품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페트루키오가 카테리나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자신도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당시의 일방적인 아내 처벌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또한 카테리나가 가부장제의 불쌍한 희생자로 전락하는 대신 순종하는 아내의 역할을 통해 남편을 길들인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최근 무대에 오르는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원작이 극중극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원래 서극에 나오는 땜장이 슬라이를 놀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거나 카테리나가 무대를 떠나기전 관객을 향해 윙크를 던지는 등의 장치를 통해 현대 관객의 거부감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최근 미국 뉴욕의 권위있는 극장인 더 퍼블릭 시어터에서 여성 연출가 필리다 로이드 연출로 공연중인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5월 24일~6월 26일)는 모든 출연자를 여성으로 캐스팅해 가부장주의 더욱 희화화 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존 크랑코 안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원작을 전복시키려는 시도는 없지만 희곡의 불편한 대사들이 빠지면서 코미디로서의 재미가 극대화됐다.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다룬 기존의 고전발레와 달리 결혼을 둘러싼 일상이 펼쳐져 있는 것이 큰 매력이다. 초연 당시에도 “원작의 주제가 발레에는 맞지 않는 듯 하지만 크랑코의 천재적인 안무가 작품의 재미를 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크랑코의 안무가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이후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도전하는 안무가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4년 국립발레단과 인연이 깊은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에서 선보인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현대여성의 입장을 반영한 해석으로 호평받으며 크랑코 버전과 비교되고 있다.
한편 국립발레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지난해 국내 초연 당시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용수들의 열연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올해는 워싱턴발레단 이적을 앞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은원의 마지막 출연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