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조업, "미국·중국 기업의 빠른 혁신속도 못 따라가"

입력 2016-06-22 10:17
국내 제조업체들은 자사의 혁신속도가 미국·일본·중국 기업에 비해 뒤처진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국내 제조업체 300여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우리기업 혁신의 현주소와 향후과제 조사'에서 업종 내 최고 혁신기업이 시속 100㎞ 변한다고 가정할 때 자사의 혁신속도는 58.9㎞에 그친다고 답했다고 22일 밝혔다. 또 업종 내 최고  혁신기업은 어느나라 출신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미국·일본·중국 등을 꼽았다.

 업종별로는 전기전자, 자동차 부문이 각각 63.8㎞, 65.5㎞로 혁신속도가 그나마 빠른 편이었고, 중후장대 업종(조선 57.7㎞, 철강 54.8㎞, 기계 52.7㎞ 등)에서는 혁신속도가 뒤처진다는 응답이 많았다.

<업종 내 최고혁신기업 100㎞ 달릴 때 국내 기업은>

 대한상의는 “과거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를 통해 세계가 놀랄만한 고속성장을 일구었지만 속도의 경제(Economy of Speed) 시대인 지금 우리기업의 혁신속도전은 중국에도 뒤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이 한국보다 혁신속도가 빠른가”라는 물음에 응답기업의 84.7%가 ‘그렇다’는 답을 했고, ‘중국이 100㎞ 변할때 한국은?’이란 질문에 평균 70.9㎞대 속도라고 응답했다.

 반도체부품 생산기업 관계자는 “우리 분야에서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3~4년 정도나긴 하지만, 인재들을 대거 싹쓸이 하는 경우가 많아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우리는 제도적 지원 부족, 구시대적 경영프렉티스 등으로 연구를 위한 연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항공기,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업체 역시 “혁신환경이 뛰어난 중국, 인도에 4~5년 후면 밀릴 것 같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혁신에 달려드는 이유는 ‘혁신의 유통기한’이 짧기 때문이었다. 응답기업들은 ‘몇 개월동안 신제품 개발 등 혁신활동을 이루지 못하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보는가’라는 물음에 평균 39.7개월이라고 집계됐다. 또 ‘1990년대와 비교해 귀 산업이 얼마나 빨라졌다고 보는가’라는 물음에 기업들은 평균 4.7배라고 응답했다.

 혁신을 위한 사회적 분담비율은 기업:정부:학계:국회 = 6:2:1:1로 나타났다.

<혁신의 분담비율>

 응답기업의 95.7%는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혁신을 위한 투자를 줄여서는 안된다”는 데 동의했다.

 정부의 혁신정책중 효과적이었던 정책을 묻는 질문에 ‘혁신을 위한 자금지원(44.3%)’이 가장 많았고 이어 ‘미래신산업 성장 기반 구축(43.3%)’, ‘실패 기업인의 재도전 지원(27.7%)’등이 나왔다.

 신현한 연세대 교수는 “미국은 오래전부터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을 해왔고 중국은 규제 걸림돌이 많지 않아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며 “우리기업 혁신의 가장 큰 로드블록(roadblock; 걸림돌)은 정해진 것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시스템, 구시대적인 기업문화”라고 진단했다.

 정부정책의 한계를 묻는 질문에는 ‘단기실적,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려 한다’(62.3%), ‘특정분야에 지원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32.0%), ‘정책홍보가 부족해 지원정책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잦다’(30.7%) 등을 얘기했다.

 경남의 조선기자재 업체는 “조선 관련업종은 연구개발기간이 길어 착수단계 자금지원만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연구개발이 끝나도 자금부족으로 묻히는 경우도 많다”며 “단기실적에 치우치기 보다는 제품양산단계까지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대한상의 이동근 상근부회장은 “이번 조사에서 한 엘리베이터 업체는 최고의 혁신 경쟁자를 꼽아달라는 물음에 이례적으로 ‘구글’을 꼽았다. 구글이 우주 엘리베이터와 같은 신산업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의 경쟁자가 될것이라는 관측이었다”며 “앞으로의 혁신경쟁은 업종이나 기업규모와 관계없이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기업이 뒤쳐지지 않기 위한 기업 스스로 파괴적 혁신노력과 함께 긴호흡으로 장기간 내다보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