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을 하얗게 집을 시원하게~ 화이트 루프 캠페인

입력 2016-06-20 00:09
서울 종로구 명륜3가동 주민 남기현씨가 18일 한 주택 옥상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옥상에 선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신발 밑창을 뚫고 열기가 전해졌다. 볕이 따가웠던 지난 18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명륜3가동의 수은주는 29도까지 뛰었다. 가파른 언덕 위에 촘촘하게 들어선 주택 중 한 곳의 옥상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그늘도 없는 옥상을 찾은 이들의 손에는 흰색 페인트가 들려 있었다.

‘화이트 루프 캠페인’은 ‘10년 후 연구소’의 조윤석 소장이 2014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미국 뉴욕 등 해외에서 진행되는 캠페인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그는 ‘당장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 나섰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지붕의 빛 반사율이 높아져 실내 온도는 3~4도 낮아졌고, 냉방에너지는 10~20% 덜 쓰게 됐다.

조 소장은 “우리나라처럼 옥상이 녹색인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다들 옥상은 녹색이어야만 하는 줄 알았던 것 같다”며 “10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인 옥상을 흰색으로 칠하는 것만으로도 기후 변화를 늦출 수 있다”고 했다.

이날 명륜3가동에서 다섯 가구가 옥상을 하얗게 칠했다. 이 동네에 ‘흰 옥상’ 바람을 불게한 이는 남기현(38)씨다. 남씨는 옥탑방에 세 들어 사는 학생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우연히 ‘화이트 루프 캠페인’을 알게 됐다. 그는 “옥탑방에 차광막을 설치했는데도 찜질방처럼 후끈하더라. 에어컨도 근본적 해결책은 아닌 거 같아 캠페인 참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옥상을 하얗게 칠하고 나서 효과를 본 남씨는 동네 주민에게 캠페인을 소개하고 직접 페인트칠에도 나서고 있다.

캠페인이 3년째 꾸준하게 이어지는 동력은 ‘릴레이 품앗이’ 덕이다. 자기 집 옥상을 하얗게 칠하는 데 도움을 받은 이들은 다른 집 옥상을 찾아 노동력을 제공한다. 지난해 도움을 받았던 이욱영(40·여)씨도 명륜동을 찾아 일손을 거들었다. 이씨는 “올 여름이 일찍 찾아왔지만 아직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될 정도다. 도움만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품앗이를 하러 왔다”고 했다.

입소문을 타고 인근 주민들이 수박과 음료수를 두 손에 들고 “우리도 같이 하자”며 하나둘씩 모여 들었다. 황정임(62·여)씨는 “의심 반, 믿음 반이었는데 직접 옥상을 흰색으로 칠해보니 시원해지는 걸 느꼈다. 동네 옥상이 모두 하얘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얗게 칠해진 옥상은 눈부셨지만 열기는 한층 꺾였다. 53.2도까지 치솟았던 회색 콘크리트 옥상은 페인트칠을 한지 1분 만에 45.5도로 떨어졌다.

글·사진=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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