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작가' 김려령, "신안 성폭행 사건 신작과 닮아 놀랐어요"

입력 2016-06-16 10:32 수정 2016-06-16 13:48
구성찬 기자

“나만 당한 것이 아니라는 억지 위로를 품고 모르는 척 숨죽여 살아야 할까. 엄마는, 아빠는, 오빠는 내게 어떤 조언을 해 줄까. 가만히 있으라고 할까.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아프다.”(‘아는 사람’ 중에서)

이런 판박이 사건이 있을 수가. 피해자는 그룹 과외를 받던 여고생. 가해자는 함께 공부하던 남학생. 사건이 벌어진 장소는 과외 선생의 오피스텔이다. 한 차례 그 끔찍한 일이 벌어진 뒤 휴가를 떠났다던 과외선생이 나타나다니. 둘 사이에 사전 모의가 있었던 게다. 그룹과외를 받던 여자 친구들이 그렇게 떠나갔던 걸 뒤늦게 깨닫는 주인공.

“성폭력은 현장을 다루면 너무 아파 치유의 과정을 다루던 게 기존 소설이지요. 이제는 현장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성폭력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그 심각성을 알리고 싶었지요.”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45)이 등단 10년 만에 소설집 ‘샹들리에’(창비)를 냈다. 첫 소설집인데 청소년 대상이다. 어른이 읽어도 좋을 경계의 소설이다. 수록작 중 ‘아는 사람’은 최근 사회문제가 된 ‘신안 여교사 성폭행 사건’을 연상시킨다. “너는 끝났지? 나는 시작이다.” 피해 여고생이 허적허적 길을 나와서도 112에 신고하며 뱉는 마지막 외마디마저도.

1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1층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이 마지막 문장을 쓰기까지 마음이 너무 아파 울다가 쓰기를 중단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며 “그렇게라도 힘이 돼주고 싶었다”고 했다. 수록된 7편의 단편은 하나 같이 문제적이다. ‘아는 사람’이 사회 이슈를 정면으로 건드린 것이라면, ‘고드름’은 형식면에서 파격적이다. ‘고드름’은 PC방에 모인 고교생 3명이 ‘살인 사건이 벌어졌는데 범인은 있고 범행 도구는 없다’는 뉴스를 접한 뒤 아마도 고드름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추리를 하며 꼬리를 물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어떤 설명이나 묘사도 없고, 등장하는 애들 이름 하나 없다. 그런데도 누가 얘기했는지 확연히 알 수 있는 그 놀라운 솜씨라니.
그는 “말은 누군가의 감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빨리 전달해주는 매체 아닌가.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며 “내가 써놓고도 재밌어 웃고 또 웃었다”며 또 말했다.
수록작 중 ‘그녀’와 ‘미진’은 화자를 달리한 연작소설이라는 점에서 역시 실험이 돋보인다. 주제에는 작가 철학이 녹아 있다. 서울 사는 차남이 시골에 갈 때마다 동네 어른들은 부모를 모시는 장남에게 잘 해야 한다고 한마디씩 덕담을 건넨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하루 이틀이지. 더 이상 참지 못한 차남은 차에 실린 곡식자루를 다 던져버리는데….

“작가들이 할 수 있는 것도 그냥 톡 건드려주는 것일 뿐 내 생각을 강요하는 건 아니지요. 아무리 선일지라도 강요가 되면 그건 억압이 되니까요.”
소설집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아는 사람’을 제외하곤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웃음코드가 있다. 또 슬쩍슬쩍 ‘욕설’을 과하지 않게 끼워 넣어 청소년이 쉬 감정이입하게 한다. 

작가는 2006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던 해 3대 아동문학상을 석권한 기린아다. 점차 ‘너를 봤어’ ‘트렁크’ 등 일반 장편을 냈다. 그는 “등단은 아동문학으로 했지만 문창과 시절 내내 소설을 썼고 지금도 쓰기는 소설이 더 편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왜 청소년 소설을 쓰는 것일까.
“내 안의 반짝반짝 빛났던 청소년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 그래서 지금의 청소년들과 최대한 가까워지고 싶은가 봐요.”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