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건(Hooligan)이란 말은 19세기 말 영국 런던의 밤거리를 주름잡았던 아일랜드인 폭력배 패트릭 훌리건에서 유래했다. 그의 성은 1899년 영국 작가 클라렌스 룩의 희가극 ‘훌리건 나이츠’에서 소란스러운 아일랜드 일가족의 성으로 사용됐고, 이 작품과 함께 영국 옥스퍼드사전에 등재됐다.
아일랜드와 앙숙인 잉글랜드 사람들에겐 기분 나쁜 이름이었다. 잠시 잊혀졌던 그 이름은 실업자가 증가한 1980년대부터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갈 곳이 없는 실업자들은 축구장으로 몰렸고, 경기가 끝날 때마다 경제난과 빈부격차를 해소하지 못한 집권 보수당을 비판했다.
울분은 때때로 구호에서 끝나지 않았다. 흥분한 사람들은 난동을 부리고 폭력을 휘둘렀다. 한두 사람이 뒤엉킨 싸움은 집단 난투극이 됐다. 그렇게 거리 한 곳을 점령한 대규모 폭력사태로 번졌다. 사람들은 이 난동꾼들에게서 한 세기 동안 잊고 살았던 불량배를 떠올렸다. 훌리건은 이제 축구장의 난동꾼들을 일컫는 대명사다.
훌리건은 서포터스 안에 도사리고 있다. 평소처럼 응원하며 관중석 속에 파묻힌 이들은 언제든 사소한 충돌만 있으면 패싸움을 벌인다. 그 중에서 리버풀과 밀월(연고지 런던) 훌리건이 가장 극성스러웠다.
헤이젤 참사는 리버풀 훌리건의 악명을 보여준 사건이다. 1985년 5월 29일 벨기에 브뤼셀 헤이젤 경기장에서 열린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리버풀과 이탈리아 유벤투스 훌리건의 충돌로 39명이 사망하고 45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잉글랜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프로축구 시장이 큰 유럽 각국에서 경기를 마칠 때마다 폭력사태로 몸살을 앓았다. 러시아 네덜란드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그 중에서 러시아 훌리건은 가장 악명이 높다.
잉글랜드 네덜란드 이탈리아는 ‘3대 훌리건’으로 묶여 있었지만 러시아는 그 자체로 존재감이 뚜렷했다. 소련 시절인 1970년대부터 존재했던 이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검거되지 않기 위해 언제나 피신동선을 확보하고, 붙잡힐 땐 무기를 들고 덤빈다.
이들은 소련 붕괴로 러시아축구협회가 새로 출범해 유럽축구연맹(UEFA)에 가입한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서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서유럽 팀들은 대륙별 대회에서 러시아 팀을 만나면 선수보다 관중 때문에 공포에 떨었다.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조별리그 B조 1차전이 열린 지난 12일 프랑스 마르세유의 폭력사태는 러시아 훌리건의 악명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잉글랜드와 러시아 대표팀은 1대 1로 사이좋게 비겼지만 관중들은 서로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부상자의 대부분은 잉글랜드 관중이었다.
잔혹한 살인사건이나 화기를 이용한 공격은 없었지만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휴양도시 마르세유를 초토화하고, 핏빛으로 얼룩지게 만든 훌리거니즘(Hooliganism)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리즘(Terrorism)만큼이나 평범한 관중과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러시아 훌리건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이 나타났다. 프랑스 검찰은 15일 기자회견에서 “양국 폭력사태에서 잘 훈련된 러시아 훌리건 150명이 있었다”며 “종합격투기용 글러브를 준비하는 등 폭력행위를 준비했고, 조직적으로 신속히 움직여 체포망을 피했다”고 밝혔다. 검거된 러시아 훌리건은 고작 2명이었다.
잉글랜드 훌리건은 리버풀, 레스터시티, 리즈유나이티드 등 프로축구 팀의 ‘연합군’ 수준으로 금세 와해됐지만 러시아 훌리건은 처음부터 싸움을 준비한 150명의 조직이었다.
UEFA는 프랑스 검찰 수사를 근거로 러시아에 엄중한 경고를 내렸다. 징계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러시아 관중이 다시 문제를 일으키면 대표팀을 유로 2016에서 실격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란의 조짐만 있어도 징계를 적용하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 집행유예인 셈이다. 잉글랜드는 징계를 면했다. 하지만 폭력사태 가담자는 프랑스 수사당국에 의해 사법 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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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