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오바마, 트럼프 거칠게 비난

입력 2016-06-15 11:23
카메라 앞에 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올랜도 총기난사 이후 또다시 ‘이슬람 입국 금지’를 주장하며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재무부에서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고 총기난사 수사상황과 이슬람국가(IS) 격퇴 전황을 보고받은 뒤 기자들을 만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정 종교 전체를 폭력과 연루된 것으로 간주하고 이민자들을 선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며 “그러나 미국인 중 모든 무슬림 시민권자들을 감시하고 차별하라는 주장은 미국의 민주적 가치에 어긋난다”고 반박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트럼프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야당의 사실상 대선후보에 대한 현직 대통령의 비난 치고는 가장 강도 높은 수위였다고 미국 언론들은 평가했다.

 그는 “미국은 종교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적 자유에 근거한 나라로 종교적 시험을 하지 않는다”며 “미국이 모든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거나, 특정 종교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이는 테러리스트들을 돕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급진적 이슬람(Radical Islam)’이라는 용어 사용의 회피를 문제삼는 것은 “정치적 주장이자 현혹”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이 올랜도 총기난사의 배후를 급진적 이슬람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IS가 미국인들을 덜 죽이는가? 군사적 전략이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위협을 다른 용어로 부른다고 위협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이 오히려 테러리스트들을 버릇없게 만들고 있다며 되받았다. 트럼프는 논평을 내고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의 적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그는 적을 우리의 동맹보다 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항상 미국을 우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사실상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도 트럼프 비판에 가세했다. 클린턴은 피츠버그에서 집회를 갖고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은 수치스럽다”며 “트럼프가 기질적으로 대통령이 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몰아부쳤다.

 공화당의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기자회견을 갖고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라이언 의장은 “미국이 지금 ‘급진 이슬람’과 전쟁을 하는 것이지, ‘일반 이슬람’과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이 나라와 전 세계의 대부분 무슬림은 온건하고 평화로우며 관대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슬림은 우리의 파트너이며,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미국의 국가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라이언 의장은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뒤에도 트럼프의 멕시코계 연방판사 비판 발언을 ‘인종차별’이라고 반발하는 등 트럼프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전날 “내가 당선되면 지금의 이 테러 위협을 어떻게 끝낼지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우리의 동맹에 대한 테러 역사를 가진 나라로부터 이민 수용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 무슬림 입국 금지를 거듭 촉구하면서 “이민자들의 신원이 적절하고 완벽하게 검증될 때 입국금지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