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에게 “장비를 놔두고 현장을 떠나라”고 말했다면 해고로 볼 수 있을까. 1심과 2심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부장판사 김성대)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신모(53)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신씨는 서울 강남에서 한 크레인 업체를 운영했다. A씨는 2012년 8월부터 신씨의 크레인업체에서 운전기사로 일했다. 신씨는 2014년 4월 경기 화성의 한 공사현장으로 120톤 크레인과 함께 A씨를 파견했는데, A씨는 공사 첫 날 비가 많이 오자 공사를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연락 없이 현장으로 가지 않았다.
공사 현장에선 A씨가 오지 않자 업무에 차질이 생겼다. 공사 현장소장은 “기사가 연락도 없이 현장에 출근하지 않았으니 크레인을 철수하거나 기사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 달라”고 신씨 측에 요구했다. 신씨 측은 다른 기사를 급히 현장에 내려 보냈고, 회사 담당자는 A씨와 만나 “현장 일을 하지 못하게 됐으니 대기하라”고 말했다. A씨는 다른 기사의 크레인을 운전하라는 지시에도 “구조상 운전하기가 여의치 않다”며 거부하고 출근하지 않았다. 회사는 2014년 6월 새로운 기사를 고용했다.
신씨는 A씨를 해고하며 예고를 하지 않아 30일분의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25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근로기준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해야 한다. 만약 예고하지 않았을 때는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법정진술과 통화내역 등 증거를 토대로 신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신씨가 A씨를 해고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신씨 등은 A씨에게 직접적으로 ‘해고 한다’ 또는 ‘회사를 그만두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다만 ‘크레인을 놓아두고 현장을 떠나라’는 취지의 말을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일반 사무직과 같이 일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출·퇴근하고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사현장에서 철수하라고 한 것이 근로계약관계의 종료의사를 표시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장비 놔두고 현장 떠나라' 말했다면 해고?… 엇갈린 1·2심 판결
입력 2016-06-15 09:32 수정 2016-06-15 0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