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비밀은 없다’에서 진한 박찬욱 감독의 향기가

입력 2016-06-14 19:55
뉴시스

이경미 감독 작품이라는 데서 눈치를 챘어야 했다. 이토록 독특한 캐릭터와 참신한 구성, 그리고 감각적인 연출까지. 영화 ‘비밀은 없다’은 매우 새로우면서도 왠지 친숙하다. 박찬욱 감독의 향취가 작품 곳곳에 어려 있어서다.

“박찬욱 감독님은 제가 끄적거리는 모든 걸 봐주시는 분이세요. 늘 존경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분과 가까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14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CGV에서 열린 비밀은 없다 기자간담회에서 이경미 감독은 영화에 박찬욱 작품 오마주로 보이는 몇 부분이 있다는 말에 담담한 답변을 내놨다. 박찬욱 감독이 각본에도 함께 참여한 작품이니 그럴만하다.

이경미 감독이 전작 ‘미쓰 홍당무’(2008)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완성됐다. 짧지 않은 기간동안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갈팡질팡했다. 그런 그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 준 이가 바로 박찬욱 감독이었다.


이경미 감독은 “미쓰홍당무 이후 박찬욱 감독님의 차기작인 ‘도끼’ 시나리오에 참여했다. 그리고서 이 영화의 전진이 되는 스릴러물 ‘여교사’(가제)를 썼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교사는 비전이 보이지 않았고, 결국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한동안 방황의 나날을 보내던 이경미 감독에게 박찬욱 감독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당시 미국에서 ‘스토커’를 준비 중이던 그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꽉 막혔던 길을 열어줬다.

이경미 감독은 “박찬욱 감독님이 여교사 서브플롯을 발전시켜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하셨다”며 “둘이 함께 시놉시스를 쓰며 작품을 완성시켜나갔다”고 설명했다. 비밀은 없다는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됐다. 이 영화 원제는 ‘불량소녀’였다.

비밀은 없다는 국회 입성을 노리는 종찬(김주혁)과 그의 아내(연홍)에게 닥친 선거기간 15일 동안의 사건을 다뤘다. 갑작스럽게 딸이 실종된 상황에도 선거에 집중하는 종찬과 딸을 찾으려 분투하는 연홍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들의 충격적인 이야기가 하나 둘 펼쳐진다.


이경미 감독은 “미성숙하고 불안전한 엄마가 딸의 진심을 확인한 뒤 딸이 사랑하는 존재까지 품게 되면서 성숙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단순한 모성애가 아니라 확장된 의미의 모성애를 그리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배우들의 열연으로 작품의 메시지는 한층 명확해졌다. 폭발하는 손예진의 연기와 절제하는 김주혁의 연기가 어우러져 시너지를 냈다.

손예진은 “전형적인 슬픔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부분이 광기로 보일 수 있었을 것 같다”면서 “감정신은 매번 어렵다”고 토로했다.

김주혁은 “자신의 일에 대한 야망은 누구나 있을 테니 종찬을 이해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며 “모든 걸 잃은 남자의 허망함이 느껴지도록 연기했다”고 전했다.

뉴시스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15세 관람가로 개봉돼 내심 기대했으나 여지없이 ‘청불’로 분류됐다.

이경미 감독은 “우리 영화가 어쩌면 곡성보다 정서적으로 센 영화”라며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등급 조정하는 분들이 걸려고 하는 모든 게 다 들어있다”고 웃었다. 영화는 오는 23일 개봉된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