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눈에 띄게 세탁소가 사라지고 있어서요. 혹시 세탁소 추천받을 수 있을까요?” “이제는 세탁소를 찾아다녀야 할 지경이네요.”
서울 종로구 서촌 주민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세탁소 고민’이 종종 올라온다. 남들은 ‘핫 플레이스’(뜨는 동네)에 산다고 부러워하지만 주민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너무 많은 방문객들의 소음만 문제되는 게 아니다. 세탁소, 슈퍼마켓 등 편의시설이 동네에서 하나씩 둘씩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엔 카페와 술집 등이 들어온다. 지난 2월 중순부터 한 달 사이에 서촌 일대 세탁소 3곳이 문을 닫았다.
16년 동안 서촌을 지켰던 ‘현미세탁소’는 지난 3월 15일 서대문구 홍은동으로 이사를 갔다. 세탁소 주인 이동범(55)씨는 14일 “최근 2년 새 임대료가 4배 이상 올라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단골들을 위해 하루에 두 번 서촌으로 세탁물 수거·배달을 나간다.
동네가 뜨는 건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다. 관광객이 늘어도 매출에 영향이 없는 세탁소, 수선집 등 주민을 위한 가게들은 임대료 폭탄을 견디지 못해 떠난다. 주민들도 빠져나간다. 집주인들은 비싼 값에 집을 팔고 다른 동네로 가고, 세입자들은 비싼 세를 이기지 못해 밀려난다.
또 다른 뜨는 동네인 서울 마포구 연남동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동네가 번성해 사람들이 몰리면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내몰리게 되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연남동은 동진시장 골목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됐고, 최근 경의선 숲길공원 덕에 ‘연트럴파크’로 불린다. 2012년 198개였던 연남동의 음식점과 숙박업체는 2014년 312개로 늘었다. A공인중개사무소 사장은 “요즘 연남동 주택 빌라들이 1층을 개조해 작은 가게를 만드는 추세”라며 “2년 전만해도 평당 2000만원 수준에서 거래되던 가게들이 최고 평당 6000만원대로 올랐다”고 했다.
연남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A씨는 세탁소 때문에 ‘구(區)’를 넘나든다. 세탁물을 들고 큰길 건너 서대문구까지 ‘원정’을 간다. A씨는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 세탁소 가는 몇 분도 자리비우기가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A씨의 단골 세탁소 자리에는 카페가 들어왔다.
동네가 급변하다보니 10년 넘게 산 주민이 세탁소를 찾아 방황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주민 전모(67·여)씨는 얼마 전 겨울외투를 맡기려고 나섰다가 땡볕에서 30분을 헤맸다. 원래 다니던 세탁소가 떠난 줄을 몰랐던 것이다. 다른 세탁소로 갔지만 그마저도 문이 닫혀 있었다. 떡방앗간도 한두달 전쯤에 사라졌다. 전씨는 “이제는 좋은 날에 떡 해먹을 곳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연남동에서 22년째 수선집을 운영하는 임모(66·여)씨는 “집값이 급격히 오르면서 20년 단골들 대부분이 최근 3년간 동네를 떠났다”고 했다. 임씨는 오는 10월 재계약 때 주인이 월세를 올려달라고 하면 이곳을 떠나야할지 고민하고 있다.
‘망리단길(망원동+경리단길)’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마포구 망원동도 서촌, 연남동의 전철을 밟고 있다. 망원시장 옆 골목에는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미용실, 모둠전집, 일반 가정집들이 빙수가게, 카페로 바뀌었다. 상가 임대료가 오르면서 주민 생활시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뿌리를 박고 살던 주민이 떠나는 대신 카페와 술집, 음식점 등으로 북적여도 괜찮은 걸까. 전문가들은 동네가 생명력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마을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남기범 교수는 “동네에 거주민이 사라지고 상업적 공간만 남으면 동네가 오래가기 어렵다”며 “도시가 지속되려면 미용실, 세탁소, 슈퍼마켓 등 주민이 머물러 살 수 있는 환경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김영환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이 장소만 옮겨 반복되고 있다. 홍대나 대학로 등 선례를 통해 미리 대비책을 준비했어야 한다”며 “마을 공동체에 필요한 부지나 건물은 공공부문이 확보해서 저렴하게 임대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동네는 뜨고 주민은 울고… 서촌·연남동·망원동 ‘한숨’
입력 2016-06-15 0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