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를 잃어 버린 브라질 축구

입력 2016-06-13 17:20
페루 축구 대표팀이 13일(한국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폭스버러의 질레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2016 코파아메리카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1대 0으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브라질의 미드필더 레나토 아우구스토(18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AP뉴시스

“나는 경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뿐이다.”

2016 코파아메리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브라질의 카를로스 둥가 감독이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삼바 축구’를 구할 해법을 내놓진 못했다.

브라질은 13일(한국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폭스버러의 질레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페루에 0대 1로 패했다. 비기기만 해도 8강에 오를 수 있었던 브라질은 이날 패배로 B조 3위(1승1무1패·승점 4)에 그쳐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브라질의 조별리그 탈락은 1987년 대회 이후 처음이다.

브라질로선 억울한 실점이었다. 양 팀이 0-0으로 맞서 있던 후반 30분 페루의 앤디 폴로가 브라질 골대 오른쪽에서 올린 볼을 문전으로 쇄도하던 라울 루이디아즈가 골로 연결했다. 그런데 문제는 볼이 다리가 아니라 오른팔에 맞은 뒤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브라질 선수들은 핸드볼 반칙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부심 역시 핸드볼이라는 의견을 제기했지만 우루과이 국적인 안드레스 쿤하 주심은 득점을 인정했다.

루이디아즈는 경기 후 “볼이 내 허벅지에 맞았다”며 “왜 이런 논쟁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없다. 깨끗한 플레이였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골을 1986 멕시코월드컵 8강 아르헨티나-잉글랜드전에서 나온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과 유사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당시 마라도나는 0-0으로 팽팽하던 후반 6분 잉글랜드 골문 앞에서 손으로 공을 쳐 골인시켰다. 그는 이 골에 대해 “신의 손이 일부 도왔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결국 이 경기에서 2대 1로 이겼고, 대회 우승까지 차지했다.

둥가 감독은 경기 후 “나는 경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뿐이다. 우리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갈 길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브라질 성인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고 있는 둥가 감독은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경질될 가능성이 높다.

브리질은 2014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에 1대 7 참패를 당했다. 루이스 펠리프 스콜라리 감독이 물러나고 카를루스 둥가 감독이 브라질 대표팀을 맡았다. 다소 답답한 경기를 할지라도 이기는 데 초점을 맞춘 실리 축구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둥가 감독은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이런 축구를 구사했다가 8강에서 탈락해 쫓겨났다. 그만큼 브라질은 명예회복이 절실했다.

둥가 감독은 선수들에게 소집 기간에은 야구모자, 샌들, 귀걸이 착용을 금지시켰고 스마트폰, 아이패드, 노트북 사용도 제한했다. 또 모두 식사를 마칠 때까지는 식탁을 떠날 수 없었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브라질 선수들은 여전히 브라질 축구다운 축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

무리시 하말류 전 상파울루 FC 감독은 축구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축구는 스피드와 체력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며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브라질 축구가 변질된 것 같다. 과거 브라질은 축구를 하고 독일은 뛰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 독일이 축구를 하고, 브라질이 뛰기 바쁘다. 이것은 브라질 축구가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 브라질 대표팀에서 브라질 축구다운 축구를 하는 선수는 네이마르가 거의 유일하다. 하말류 감독은 산투스 사령탑 시절 유소년 팀에 있던 네이마르를 발굴해 프로에 데뷔시킨 인물이다. 하말류 감독은 “브라질 유소년 시스템이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면서 ‘선수 수요처’인 유럽의 기호에 맞춘 지도법으로 가르치다 보니 브라질 선수들이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강점을 지운다”고 진단했다. 브라질 축구의 특징을 잃으면 아름다운 축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