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74>한국전쟁과 영화

입력 2016-06-13 15:03

또 다시 6·25를 맞는다. 신록(新綠)이 성하(盛夏)로 넘어가는 이 좋은 계절 우리는 비탄에 젖곤 한다. 민족사 최대의 비극 6·25가 자꾸 생각나서다. 66년 전 북한 김일성이 일으킨, 그래서 ‘김일성의 난(亂)’이라고 부르는 게 옳다는 주장까지 나온 이 전쟁은 우리 민족의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매년 6·25가 되면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볼만한 ‘6·25 영화’가 없다는 점이다. 무슨 기념일만 되면 관련 영화를 틀어주기 바쁜 방송국에서도 6·25에 관한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국내에서는 비교적 많이 만들어졌지만 군사독재 시절 ‘정치적 반공’ 시책에 따른 국책 홍보영화라는 인식이 퍼지는 바람에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 예외적인 경우 몇 편 빼고는 다 사라졌다. 더 이상한 건 전쟁영화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할리우드에서 ‘한국전쟁 영화’가 손꼽을 정도 밖에 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가. 궁금하던 차에 흥미 있는 기사를 발견했다. ‘할리우드는 왜 한국전쟁이라는 깊은 물에 발 담그지 않는가’라는 제목이 달린 유에스에이 투데이지의 분석기사였다. 이 신문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스토리텔링의 보고(寶庫)가 될 수 있음에도 참 이상하게도 할리우드를 비롯한 미국 대중문화로부터 거의 철저히 무시당해왔다. 이에 대해 스티븐 올포드 노바 사우스이스턴대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전쟁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발발했다. 2차대전 당시와 그 직후 할리우드는 전쟁영화를 대량으로 쏟아냈고, 그 결과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할리우드는 상상력과 창의력 빈곤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관객은 관객대로 전쟁(영화) 피로증에 걸렸다. 이 두 요인이 결합해 한국전쟁 영화 불모상태를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스티븐 길론 오클라호마 대학 교수의 분석은 전쟁의 특성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전쟁이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끝을 맺은 게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났을 때 진 것은 아니지만 성대한 승전 퍼레이드도, 나쁜 놈들을 패배시켰다는 승리감도 없었다. 그런 이유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미국 관객들은 무승부의 한국전쟁보다 승리한 2차대전에 여전히 더욱 끌렸다. 그리고 이어진 베트남전이 한국전쟁을 가려버렸다. 베트남전은 미디어의 발달로 생생한 전장의 이미지가 미국인들에게 빠짐없이 전달되면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게다가 전례 없는 반전운동이 확산되면서 미국은 더욱 깊숙이 베트남전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는 한국전쟁과 관련해 거의 유일하게 대중적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영화 ‘매쉬(MASH, 1970)’조차 겉만 한국전 영화일 뿐 속은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라는 사실로 나타났다. 단적인 예로 매쉬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덥수룩한 머리모양은 베트남전 병사들의 것이지 단정하게 치깎았던 6·25 당시 미군의 머리모양, 곧 크루컷이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 데이빗 핼버스텀은 6·25를 다룬 저서 ‘가장 추웠던 겨울’에서 ‘매쉬’가 사실은 베트남전에 관한 영화였다고 지적하면서 영화가 나왔던 1970년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로서는 반(反)베트남전을 다룬 영화를 만드는 게 지극히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배경을 한국전으로 슬쩍 옮겨 베트남전을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이밖에 할리우드가 한국전쟁 영화를 기피한 이유로는 이런 것들도 있다. 첫째, 전쟁기간이 짧았다. 엄청난 피해를 낸 전쟁이었지만 전쟁기간은 제2차대전이나 베트남전보다 상대적으로 짧아서 상상력의 공간이 그만큼 적었다. 둘째, 전쟁이 일어난 곳이 유럽이 아니었다.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은 대부분 유럽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었던 만큼 시각이 유럽중심적이다. 한국은 유럽이 아니었으므로 이들의 취향에 들어맞지 않았다. 셋째, 한국전쟁이 끝난 후 상당기간 동안 피폐하고 침체된 한국의 경제 및 문화 상황 탓에 한국전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한 한국(영화업계)의 협조가 어려웠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할리우드의 한국전쟁 영화는 한줌밖에 안되지만 그중에서도 그나마 볼만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추려본다.

①철모(Steel Helmet, 1951)=B급영화의 거장 새뮤얼 풀러가 만든 할리우드 최초의 한국전 영화다. 나름대로 수작으로 꼽힌다.

②착검(Fixed Bayonets, 1951)=‘철모’의 성공에 힘입어 또 다시 새뮤얼 풀러 감독을 기용해 만든 한국전 영화다. 비록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제임스 딘이 공식 데뷔한 영화다.

③배틀 서커스(Bttle Circus, 1953)=리처드 브룩스가 연출하고 험프리 보가트, 준 앨리슨이 출연했다. ‘매쉬’의 할아버지뻘 되는 영화로 보가트가 매쉬, 곧 야전이동외과병원의 군의관, 앨리슨이 간호사로 나와 한국전을 배경으로 사랑을 엮어간다. 전쟁보다는 사랑이야기다. 제목은 매쉬가 텐트를 풀었다 세웠다 하면서 전장을 떠도는 모습이 방랑하는 서커스단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④원한의 도곡리 다리(The Bridges at Toko-Li, 1954)=한국전에 종군기자로 참가한 퓰리처상 수상작가 제임스 미치너의 실화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마크 롭슨 감독, 윌리엄 홀든, 그레이스 켈리, 프레드릭 마치 공연. 실감나는 공습신으로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받았다.

⑤한국의 고지(A Hill in Korea, 1956)=매우 드물게 보는 영국의 한국전 영화다. 원제가 ‘한국의 지옥(Hell in Korea)'이었다가 배급 상의 이유로 바뀌었다. 줄리언 에임스 감독에 조지 베이커, 해리 앤드루스 주연이지만 조연 및 단역으로 나중에 유명해지는 스타들이 등장한다. 마이클 케인, 로버트 쇼, 스티븐 보이드 등.

⑥타임 리미트(Time Limit, 1957)=명우 칼 몰든이 유일하게 감독한 영화다. 주연을 맡은 리처드 위드마크는 제작에도 참여했다. 한국전에서 포로로 잡힌 미군 장교가 적에게 협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펼쳐지는 군사재판 이야기다.

⑦전송가(戰頌歌. Battle Hymm, 1957)=‘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린 딘 헤스 대령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 더글러스 서크 감독, 록 허드슨 주연. 2차대전 때 실수로 독일의 고아원을 폭격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헤스 대령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고아들을 수송기에 실어 대거 제주도로 피난시키고 그 뒤로도 줄곧 도움을 주었다. 실제의 고아들이 영화에도 출연해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을 보노라면 절로 눈물이 흐른다.

⑧포크 촙 힐(Pork Chop Hill, 1959)=고전 걸작 반전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만든 노장 루이스 마일스톤의 마지막 전쟁영화다. 그레고리 펙, 조지 페퍼드 주연. 1953년 4월 포크촙 고지를 놓고 벌어진 미 육군 7사단과 중공군 및 북한군의 치열한 공방을 그렸다. 한국전 영화의 몇 안 되는 수작 중 하나.

⑨만추리언 캔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 1962)=존 프랑켄하이머 감독, 프랭크 시나트라, 로렌스 하비, 앤젤라 랜스버리 출연. 전쟁 자체를 다뤘다기보다는 한국전에서 북한군에게 포로가 돼 중공군으로부터 세뇌를 당한 미군이 미국으로 귀환해 벌어지는 서스펜스물이다. 한국전 배경 영화 가운데 가장 성공한 영화 중 하나. 북한인 첩자로 백인 악역 전문 헨리 실바가 나왔다.

⑩워 헌트(War Hunt, 1962)=데니스 샌더스 감독, 존 색슨,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 ‘플래툰’의 선구 같은 영화로 반스 상사(톰 베렌저)처럼 전장의 살육에 미친 병사를 존 색슨이 연기했다. 색슨은 나중에 ‘용쟁호투’에서 이소룡과 공연한 배우다. 워낙 저예산영화라 싸구려 티를 가리느라 주로 밤에 촬영했다.

⑪매쉬(MASH, 1970)=반전(反戰)을 주제로 전쟁을 희화화한 블랙 코미디. 로버트 올트만 감독, 엘리엇 굴드, 도널드 서덜랜드 주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나중에 앨런 앨다 주연의 TV 시리즈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한국전 영화임에도 한국인은 거의 나오지 않고 나와도 국적불명의 모습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외피만 한국전이 배경일 뿐 실제로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얘기는 베트남전이었다.

⑫맥아더(McArthur, 1977)=TV영화의 베테랑 감독 조지프 서전트가 연출했다. 그레고리 펙 주연. 기본적으로 맥아더 장군의 전기영화인 만큼 한국전쟁은 일부분밖에 묘사되지 않는다. 하지만 통일교가 46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 부어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그린 ‘오, 인천(Indhon, 1981)'에 비하면 훨씬 볼 만하다. 테렌스 영이 감독하고 로렌스 올리비에가 맥아더 역을 맡은 ’오, 인천‘은 사상 최악의 졸작 중 하나로 꼽힌다.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