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바람’ 몰아치는 유럽의 버팀목은 ‘여성’

입력 2016-06-14 00:06
오스트리아 대선 다음날인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여성 유권자들이 수도 빈에서 열린 집회에서 환호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유럽 여성 유권자들이 난민 위기 뒤 거세진 극우 광풍에 맞서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근래 들어 유럽 전역에서 실시된 투표결과를 종합한 결과 여성 유권자들이 남성유권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극우 정당 투표를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1일(현지시간) 발간된 최신호에서 전했다.

이 현상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건 지난달 22일 오스트리아 대선이었다(그래프 참고). 당시 남성 유권자의 60% 가량이 극우 정당 자유당 후보였던 노르베르트 호퍼에게 투표한 반면 여성 유권자는 비슷한 비율이 온건 좌파 성향인 녹색당 알렉산데르 판 데어 벨렌에게 투표했다.

유럽 최초 극우 대통령 집권 가능성 탓에 주목받은 이 선거에서 반 데어 벨렌은 여성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덕에 50.3%를 득표해 49.7%를 기록한 호퍼를 0.6% 포인트 차이로 간신히 눌렀다. 결과적으로 여성 유권자들이 극우 정당 집권을 막은 셈이다.

여성 유권자들이 처음부터 ‘왼쪽’이었던 건 아니다. 20세기 들어 투표권이 확대된 이래 유럽의 여성 유권자들은 외려 상당 기간 보수 세력의 버팀목이었다. 남성에 비해 종교적 성향을 더 많이 띄는 여성들이 기독교 성향 보수 정당에 주로 투표해서다. 일례로 1968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기민당은 여성 유권자 사이에서 50% 이상을 득표했다. 남성 유권자 득표율이 30%에 그쳤던 것과 대조적이다.

정치사회학자들은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여성 유권자들의 정치성향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오스트리아와 아일랜드,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에서 특히 여성 유권자의 ‘좌향좌’가 두드러졌다. 여성들이 사회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종교적 성향이 약해진 게 주요한 이유다. 이 때문에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드러났듯 여성 유권자 사이에서도 연령별 지지 성향 격차가 크다.

우파 정당 지지율이 높은 국가에서도 여성들은 ‘극우’를 택하지 않는다. 여론조사기관 이포소스모리가 최근 발표한 독일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여성 유권자는 35%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 우파성향 기민당을 지지했다. 남성 유권자들의 31% 보다 역시 높다. 반면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지지하는 여성 유권자는 12%에 그쳐 남성 유권자 지지율인 16%보다 낮았다.

예외는 지난 프랑스 총선이었다.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은 이 선거에서 여성 17%, 남성 19%를 기록해 양 성별에서 비교적 고르게 득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대해 르펜이 이민 이슈를 제외한 분야에서 극우성향 지지세력 이탈을 감수하고서라도 중도적 노선을 취해 주류 이미지를 강화했던 게 맞아떨어진 결과로 봤다. 여성 유권자들이 극우나 극좌보다 안정적 이미지를 선호하는 걸 노린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2000년 관련 연구를 진행한 바 있는 사회학자 로널드 잉글하트와 피파 노리스는 사회 변화가 계속됨에 따라 여성 유권자의 ‘온건 좌파화’가 앞으로도 심화될 것이라 봤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대해 현재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여성 유권자 역시 나이를 먹으며 보수화될 가능성을 지적하면서도, 한동안 유럽에서 여성이 극우화를 막을 가장 강력한 방패 역할을 할 것이라 전망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