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원로배우 제시카 랭(67)이 생애 처음으로 토니상을 받았다. 랭은 13일(한국시간) 미국 뉴욕 비컨 시어터에서 배우 겸 진행자 제임스 코던의 사회로 열린 제70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유진 오닐의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로 연극 부문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미국의 연극 및 뮤지컬계 최고의 상인 토니상은 매년 브로드웨이에 올라온 연극과 뮤지컬을 대상으로 각각 상을 수여한다. 미국 극장연합회·프로듀서 협회가 공동 주관하며 1947년 브로드웨이에서 배출한 연출가 앙투아네트 페리(1888~1946)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랭은 모델로 출발해 1976년 영화 ‘킹콩’의 여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초창기엔 미모로 조명받았지만 차츰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수많은 영화, 드라마, 연극에 출연했다. 그동안 2개의 아카데미상, 3개의 에미상, 5개의 골든글러브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지만 토니상과는 인연이 없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노미네이트 된 데 이어 수상까지 하는 기쁨을 누렸다. 가족의 해체를 그린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마약에 중독된 어머니 메리 역을 연기한 랭은 “마침내 오랜 꿈이 이뤄졌다.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발생한 총격 참사 때문에) 이렇게 슬픈 날에 큰 행복을 맛보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 토니상은 뮤지컬 ‘해밀턴’과 연극 ‘더 휴먼스’가 주요 상을 가져갔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1757~1804)을 중심으로 건국 초기의 역사를 다룬 ‘해밀턴’이 뮤지컬 부문에서 최우수 작품상, 남우 주연상, 최우수 극본상, 최우수 음악상, 최우수 연출상 등 11개를 휩쓸었다. 토니상 역사상 가장 많은 1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던 ‘해밀턴’은 이날 아쉽게도 2001년 뮤지컬 ‘프로듀서스’가 세운 12개 부문 수상 기록을 깨지는 못했다. 이 작품의 대본을 쓰고 작곡한 것은 물론 타이틀롤인 해밀턴까지 연기한 린-마누엘 미란다는 작곡상과 대본상을 받았다. 미란다는 남우 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해밀턴’의 또다른 주인공인 애런 바 역의 레슬리 오돔 주니어에게 양보해야 했다.
해밀턴은 카리브해 섬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미국에 건너온 뒤 조지 워싱턴의 측근이 되어 재무부 장관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의 토대를 놓은 그의 얼굴은 10달러 지폐에도 그려져 있다. 초대 국무장관인 토머스 제퍼슨이 3대 대통령이 되는데 조력했던 그는 또다른 정치가 애런 바와 권총 결투 끝에 48세로 생을 마감했다.
건국에 기여한 역사 속 인물이라는 다소 지루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해밀턴’은 랩과 힙합 등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안무를 앞세워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최고의 인기작으로 군림하고 있다. 특히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부모를 둔 미란다는 이 작품에 라틴계와 흑인 배우들만 캐스팅해 백인 중심의 미국 역사 인식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미란다는 우리나라에도 공연된 뮤지컬 ‘인 더 하이츠’의 가사와 음악을 쓴 바 있다.
연극 부문에선 추수감사절에 모인 중산층 가족을 소재로 평범한 미국 가족이 당면한 문제들을 담은 ‘더 휴먼스(The Humans)가 최우수 작품상, 남녀 조연상 등 4개를 가져갔다.
이외에 뮤지컬 부문 여우 주연상은 ‘더 컬러 퍼플(The Color purple)’의 신시아 에리보, 연극 부문 남우 주연상은 ‘더 파더(The Father)'의 프랭크 란젤라에게 돌아갔다.
한편 이날 토니상 시상식은 올랜도에서 발생한 총기 참사 때문에 경건한 분위기로 시작됐다.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들은 회색 리본을 가슴에 다는 것으로 연대감을 표시했으며, ‘해밀턴’ 팀은 축하 공연 때 필수 소품인 소총도 없이 공연하는 것으로 애도를 표현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여배우 제시카 랭, 생애 첫 토니상 수상…뮤지컬 '해밀턴'은 11개 부문 싹쓸이
입력 2016-06-13 1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