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표구 인생 이효우 대표, “수백년된 그림 맡기면서도 빨리 빨리∼”

입력 2016-06-12 16:20 수정 2016-06-12 17:19
낙원표구사 이효우 대표가 12일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풀 바르며 산 세월’ 전시장에서 자신이 표구한 원교 이광사의 행서 8곡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가나아트센터가 ‘문화동네 숨은 고수들’을 선정해 구술집을 발간하면서 출간 기념전으로 마련한 것이다. 사진=손영옥 선임기자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한문 교육도 안 받고 스마트폰으로 문자주고 받는 시대 아닙니까. 그 사람들 감각에 맞게끔 배접(표구) 해본 것이지요.”

가세가 기울어 10대 후반에 상경해 배운 표구일이 평생의 업이 됐다. 낙원표구사 이효우 (75)대표가 50여년 장인 인생을 회고하는 구술집 ‘풀 바르며 산 세월’(곽지윤·김형국 엮음)을 내고 동명의 출판기념전을 갖고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가나아트센터 내의 포럼스페이스에서다. 그가 취미 삼아 모은 조선시대 한시 작품을 갈고 닦은 솜씨로 표구한 족자, 병풍 등 30여점을 선보인다.

12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평생 한 우물을 파 꼬장꼬장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조선 후기 문인 증강 이건명(1663∼1722)의 한시를 표구한 족자 앞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미색 종이에 쓴 글씨를 짙은 밤색 꽃무늬 비단에 표구했는데, 300년은 된 글씨 작품이 지금 것처럼 감각적이다. 전시장에는 현대적 액자에 넣은 작품도 있는 등 과거와 현대를 조응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이 엿보인다.

그런 그도 원교 이광사(1705∼1777)의 행서 8곡병을 표구할 때는 조선시대 방식을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했다. “못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로 홈을 파 병풍틀을 조립하지요. 병풍틀은 삼베로 거죽을 싸고, 글씨 작품은 연화당초무늬 짙은 비단으로 배접을 했습니다. 병풍의 굽은 주사(붉은색)를 칠해 나쁜 기운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고자 했던 선인들의 의도를 살렸지요.”

전남 강진 태생의 이 대표는 10대 후반에 집안 어른이 추천해준 서울 안치조 선생의 표구사에서 일을 배웠다. 상문당 박봉환 선생은 물론 생존해 있는 동산방 박주환 선생도 스승으로 모셨다. 월전 장우성, 근원 김용준 등 동양화 대가들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쳤다.

구술작업에서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표구의 저질화에 대한 우려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최고 인기 장르는 동양화였다. 그러나 서양화에 밀리면서 일감이 줄었고, 그래서 표구사들 간 가격 경쟁이 일면서 수반되는 현상이다.
“손님들이 (표구를) 잘 해달라곤 안하고 빨리, 싸게 해달라고들 해요. 좋은 작품일수록 고객과 표구사가 어떻게 하면 작품을 살리는 표구가 될지 고민을 해야 합니다.”
서화 작품은 수 백 년 된 귀한 것인데 이를 요즘 종이나 천을 써 배접하면 당기는 강도가 서로 달라 작품이 손상된다는 것이다. 가급적 그 시대에 근접한 종이나 천을 구해 쓰지만, 그게 안 되면 부러 열화(劣化·퇴화)시켜야 오래 보존이 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구술집이 미술시장에 판치는 빨리빨리 문화에 대한 경종으로 읽혔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는 일제시대 때부터 써온 용어의 순화도 강조했다. 표구도 조선시대에는 장황(裝潢)’ ‘배접(褙接)’이라고 썼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변질된 용어가 지금껏 쓰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구술집은 가나문화재단이 기획한 ‘문화동네 숨은 고수들’의 두 번째 책으로 나왔다. 원로 배첩장의 장황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19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