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장관과 예술위 위원장을 연극 무대에 소환하다

입력 2016-06-11 18:31
김재엽이 쓰고 연출한 극단 드림플레이테제21의 ‘검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의 한 장면. 배우가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연기하고 있다. 극단 드림플레이테제21 제공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위원장, 박대출·한선교·염동열·박창식 새누리당 의원. 문화예술계가 검열의 주체 또는 옹호자로 꼽는 사람들이 연극에 줄줄이 실명으로 나온다. 그리고 지난해 연극계를 강타한 검열 파문의 피해자인 연출가 박근형, 그에게 지원금 포기를 종용하고 문서를 위조한 예술위 직원들은 물론 지난 2013년 국립극단에서 박근형이 연출한 ‘개구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하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화한다는 보도로 논란을 일으킨 기자까지 등장한다.

9일 막을 올린 극단 드림플레이테제21의 ‘검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김재엽 작·연출)은 문화예술계의 검열 파문에 맞서 젊은 연극인들이 10월 30일까지 릴레이 공연을 올리는 프로젝트 ‘권리장전2016-검열각하’의 개막작이다. 21명의 연출가가 이끄는 20개 극단이 참여해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작품이 올라간다.

‘검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은 지난해 9월 문화예술계의 검열에 대한 국회의 문화부와 예술위 국정감사 장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김종덕 장관과 박명진 위원장은 “국가와 대통령을 비판하는 작품은 지원을 철회해도 된다”는 여당 의원들의 말과 “예술작품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된다”는 야당 의원들의 말에 모두 동의한다. 그리고 예술위 직원들은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박근형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심사 관련 녹취록을 공개하자 오락가락하며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

이 작품은 지난해 박근형을 둘러싼 검열파문을 중심으로 방송 뉴스, 국정감사, 예술위 보도자료, 박명진 위원장의 인터뷰 등을 재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실제 사건의 영상물, 신문기사, 판결문 등 기록물을 극 전체 또는 일부분으로 활용해 진실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연극 중에서도 배우가 해당 내용을 사실에 가깝게 재현하는 ‘버바텀 시어터’에 가깝다. 버바텀(verbatim)은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를 뜻하는 단어로 버바텀 시어터는 ‘증언의 연극’ ‘증인의 연극’으로 불린다. 21세기 들어 영국에서 매우 각광받는 연극 형식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배우들이 단순히 재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관과 위원장 등의 언어의 이중성을 직접 지적하며 검열의 부당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검열이 얼마나 문화예술계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쇠퇴시켰는지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김재엽은 “‘권리장전2016-검열각하’의 개막작으로서 지난해 검열 파문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권력을 비판하는 연극을 만들면 안 된다는 주장은 국민을 ‘국민인 자’와 ‘국민이 아닌 자’로 나누는 정치적 판단에서 비롯됐다”고 질타했다.

김재엽의 경우 2013년 ‘개구리’가 공연되던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의 건너편에 있는 소극장 판에서 ‘알리바이 연대기’를 무대에 올렸다. ‘알리바이 연대기’는 한국의 상징적 아버지인 박정희와 자신의 실제 아버지의 삶을 교묘하게 교차시킨 작품으로 그 해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다. 원래 ‘개구리’보다 더 비판적인 작품이었지만 ‘개구리’만 보도되면서 당시 논란의 대상에서 빠졌었다.

한편 권리장전2016-검열각하는 최근 검열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예술위의 지원금 제도에서 자유롭기 위해 오로지 후원 모금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한다. 최소한의 공용 제작비와 운영비는 16일까지 소셜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모으고 있다.

‘검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 이후에는 16~19일 극단 신세계의 ‘그러므로 포르노’, 23~26일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안티고네 2016’, 30일~7월 3일 극단 돌파구의 ‘해야 된다’로 이어진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