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새장에 200개의 구두 김자인 작가 ‘누미노제’ 존재의 가치를 질문하다

입력 2016-06-11 11:44
야외설치촬영,2016, 600x350x300cm

6월 30일까지 청담동 네이처포엠 칼리파 갤러리 김시영 흑자장인과 협업

딱딱한 철골구조의 새장 100개가 있다. 새장 속에 200여개의 구두가 무기력하게 매달려 있다.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새장의 공간에서 구두들의 독백이 들려온다.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네이처포엠빌딩 201호 칼리파 갤러리에서 6월 10일부터 30일까지 전시되는 김자인 작가의 작품이다. 공간에 떠 있는 표현기법과 반복적인 설치기법이 그로테스크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있는 구두들은 아름다운 이미지다.
Ourselves installation, 600x350x300(h) cm, ceramic, 2016

심리학자 구스타프 칼 융(1875~1961)의 분석심리학 ‘자기실현’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이다. 새장에 남성과 여성의 구두조각 100켤레를 6m 철골구조물에 설치한 작가의 작품은 의식의 페르소나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의 모습들을 발견하고 탐구한다. 무의식의 영역에는 집단 무의식도 존재한다. 자신과 타자 그리고 공동체까지 ‘함께 존재한다’는 장 뤽 낭시(1940~)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전시 제목은 ‘누미노제’(Numinose)다. 누미노제는 신학용어로 분류되지만 작가는 종교적인 관점 대신 ‘성스러운 존재’ ‘인간의 깊숙한 심층’ ‘자기 자신’의 의미로 인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여기서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의 개념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100켤레의 도자조각과 그것을 한데 묶은 6m의 대형 설치작품 그리고 회화 두 점은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된 인간과 집단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600x350x300cm, 2016

이화여대 서양화과에 들어가 조소과를 졸업한 작가는 작업 초기부터 하이힐 이미지를 사용했다. 하이힐은 인간을 상징하는 형상이다. 사회 속에서 겪게 되는 ‘여성성’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켜 빨간 페라리 도료를 입힌 테라코타 하이힐을 만들고 설치한 후 그것을 깨는 퍼포먼스로 눈길을 모았다. 유년시절부터 교육받은 전통 예절규범과 자아정체성의 혼란, 전통과 현대의 가치 충돌로 받은 상처들을 상감청자하이힐로 풀어낸 것이다.
<고해성사>, 2010, 설치작품

‘yourself’라는 단어가 새겨진 새장 안의 구두는 올바른 제짝이 아니다. 남성구두와 여성구두의 조합으로 이뤄진 한 켤레, 킬 힐과 메리제인의 조합으로 이뤄진 여성구두 한 켤레, 검은빛과 금빛 구두들로 구성된 남성구두 한 켤레, 하나의 새장에 세 짝의 구두가 매달린 모습도 볼 수 있다. 100개의 새장 안에는 모두 다른 200개의 구두들이 설치되어 있다. 자신의 무의식적 파편이기도 하고 각기 다른 페르소나일수도 있다.
, 2016, 80x33cm

공동체 속에서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타자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커다란 구조물로 묶여 하나의 작품이 되는 ‘ourselves’(100개의 나의 영안실)가 단순한 설치방법이 아닌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작가와 관객의 소통에 있다. 관람객들은 좌대 위에 놓인 작품을 단순히 감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설치물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도자조각들에 에워싸인 채 작품 하나하나의 다름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느끼게 된다.
<금채요변흑자잔>, 김시영

‘yourself’의 작업과정에는 ‘불’의 힘을 빌렸다. 1300도의 고온에서 표면의 색과 질감이 다채롭게 변성되는 ‘흑자’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고려흑자를 30년 외길인생으로 재현하고 있는 흑자의 최고봉 김시영 장인과 협업했다. 관람객들은 흑자구두 작품을 감상하면서 전통 도자의 신선함과 함께 아름다움에 매료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는 가변적이고 불안한 현실 속 존재의 가치를 일깨우는 시간을 갖게 한다(02-516-9643).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